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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비 주민살해­평창군 재미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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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비 주민살해­평창군 재미재 현장

입력
1996.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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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피격 주변 피투성이 “참혹”/30㎝가량 덤불로 시체덮어 교묘히 위장/갖고온 도시락은 밥 없어진채 빈그릇만/할머니 여러차례 둔기맞은듯 머리 함몰9일 하오 주민 3명이 살해된 채 발견된 강원 평창군 진부면 탑동리 재미재 현장 주변은 온통 피로 얼룩진 채 처참한 모습이었다. 현장에는 주민들이 갖고 있던 도시락과 산에서 딴 느타리버섯 등이 사방에 널려 당시의 참혹했던 순간을 보여줬다.

주민들이 살해된 탑동리 일대는 오대산국립공원과 인접한 지역으로 68년 울진 삼척지구로 침투한 무장공비가 만행을 저지른 이승복 생가가 7∼8㎞밖에 떨어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발왕산과 계방산을 잇는 태백산맥의 주능선으로 잔당들이 도주로로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공비 잔당의 도주로 차단을 위해 오대산 일대에 투입된 백호부대 비호연대 소속 수색대 3천여명은 주민 2명이 전날 버섯을 따기 위해 집을 나간후 실종됐다는 신고를 받고 이날 날이 밝자마자 매복을 풀고 수색에 나섰다. 실종된 주민들이 도주중인 공비 잔당에 의해 화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재미재 반대편에서는 특전사 병력들이 산 정상을 향해 훑어 올라갔다. 공비 잔당을 추적중인 헬기 10여대도 재미재 일대로 옮겨 수색작전에 참여했다. 마을 주민들도 군인들과 함께 실종된 주민들을 찾아 나섰다.

하오 2시50분께. 해발 1,100m의 재미재를 향해 하루종일 저인망식 수색작업을 펴던 군수색대는 막바지 수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재미재 부근 헬기장이 저만치 보이는 곳까지 수색대가 이르렀을때 수북이 쌓인 낙엽사이로 갈대로 교묘히 위장된 덤불이 눈에 띄었다. 덤불속에서는 뭔가 희끄무레한 물체가 보였다. 순간 직감적으로 실종 주민이라는 생각이 든 군수색대는 조심스레 갈대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수색대 뒤쪽에서 따라오던 주민들도 주위로 몰려들었다.

한 수색대원이 30㎝가량 쌓인 덤불을 제거하자 파란색 작업복 상의에 청바지를 입고 흰색 운동화를 신은 주민 김용수씨(44)의 모습이 나타났다. 머리에 총상을 입은채 온몸에 피가 말라붙은 참혹한 모습이었다. 이어 50㎝ 떨어진 곳에서 이영모씨(53)가 바지가 벗겨지고 복부에 총상을 입은채 발견됐다. 주민들은 끔찍한 장면에 얼굴을 돌렸다.

시신 옆에는 이들이 갖고 왔던 도시락이 밥이 없어진 채 빈그릇만 나뒹굴었다. 느타리 버섯을 담던 망태기와 톱 곡괭이도 옆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주민들의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서 제조번호가 표시돼 있지 않은 M16소총 탄피 20여개가 반경 10m내에서 잇따라 발견됐다.

군수색대는 『주민들이 공비들을 먼저 발견하고 도주하자 공비들이 총을 쏜 것으로 보인다』며 『이씨의 파란색 작업복이 5m 가량 떨어진 덤불위에서 발견된 점으로 미뤄 공비가 옷을 바꿔 입고 도주하려다 맞지 않자 버려두고 달아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공비 잔당이 멀리 빠져나가지 못했다고 판단한 군수색대는 다시 재미재를 향해 올라가다 3백여m 떨어진 곳에서 같은 마을 주민 정우교씨(69·여)의 시신을 찾아냈다. 정씨의 시신도 역시 덤불에 덮여 있었다. 이때가 하오 4시5분. 둔기에 여러차례 맞은 듯 머리가 함몰돼 있었고 목졸린 흔적도 역력했다.<평창=특별취재반>

◎왜 어떻게 주민들 살해됐을까/길잡이 이용하다 이동방해 판단한듯/인질로 끌려가던중 달아나다 당했을수도

도주중인 무장공비 잔당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가 처음으로 발생했다. 공비들은 왜 어떻게 민간인들을 살해했을까.

겹겹이 싼 군의 포위망을 뚫고 북으로의 도주를 시도하고 있던 공비들은 버섯을 따러 온 민간인들과 우연히 마주쳤을 것으로 보인다. 가까스로 군수색대의 사정권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공비들은 위치가 노출되자 이들 민간인의 입을 어떤 식으로든지 막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살해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짐작된다.

공비들이 민간인들을 살해하게 된 과정은 세가지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먼저 공비들이 민간인들과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살해했을 가능성이다. 사소한 움직임이나 소리에도 극도로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공비들은 이들이 민간인인지 군수색대인지 구별할 여유가 없어 무작정 사격을 가했을 지도 모른다.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아 얼마동안 끌고 다니다 살해했을 수도 있다. 공비들이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은 느끼지 않았을 것이고 이들을 도주를 위한 길잡이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주과정에서 이들이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신속한 이동에 방해가 됐고, 뒤늦게 살해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현재로서는 이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살해된 이영모씨와 김용수씨의 시신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시신이 갈대 등으로 교묘히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인질로 끌려가던 민간인들이 달아나다 공비들의 총에 맞아 숨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 김씨는 같은 부위에 총을 맞은 것이 아니라 각각 머리와 복부부분에 총상을 입고 있었다. 또 총소리가 마을쪽으로 들릴 것이 분명한 데도 이를 무릅쓰고 민간인을 사살했을 만큼 상황이 급박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8일 하오 4시10분께와 30분께에 각각 시차를 두고 총소리가 들렸다는 마을주민들의 증언도 이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경우 민간인들은 총에 맞아 숨진 뒤 공비들이 은닉을 위해 시신을 발견지점으로 옮겼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김씨와 5백m가량 떨어진 곳에 숨져있었던 정우교할머니는 발견되자마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군 당국은 한편으로는 도주로가 막힌 상황에서 무장공비들이 무력항전을 시작한 것으로도 분석하고 있다. 시신이 발견된 지점이 무장공비들의 교신이 포착된 건봉산에서 80㎞ 떨어진 곳이고 여기에서 마지막까지 무력항전하라는 북한의 지령을 받았으리라는 것이다. 『반드시 보복하겠다』는 북한의 잇따른 성명도 이같은 분석의 바탕이 되고 있다.<평창=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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