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어떻게 사는 민족인가』라고 외국인이 묻는다면, 우리는 아마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인도 늙은이와 젊은이, 농촌인과 도시인, 가진 자와 안가진 자 등 연령, 지역, 계층에 따라 각각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기에 갖는 아이덴티티라 할까 공통점은 어떤 것일까 한 번쯤 생각해볼 여유는 가져야 할 것이다.특히 요즈음같은 결실의 계절에 각종 모임과 행사도 많아 이리저리 분주하게 지내면서 한국인의 생활질서를 새삼 되묻게 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독특한 사회규범이랄까 생활법칙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같다. 추석같은 때의 고향찾기는 말할 필요도 없고, 결혼과 장례, 동창회와 친목회 등에 회비와 경조사비용으로 상당한 압박을 받는 것도 우리 삶의 모습이다. 크게 보면 끼리끼리 모여사는 우리네 즐거운 생활질서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이런 생활질서를 좀 속 깊이 관찰해보노라면 오늘날 너무 변질되고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인은 한 생명으로 태어날 때부터 법으로 금지된 낙태가 남아선호 등의 이유로 「생명의 존엄」을 현저히 해치는 상황에 놓인다. 세계 최고를 기록하는 교통사고에 목숨을 걸고 종말론적으로 사는 한국인에게 삶의 질서를 말한다는 것은 사치인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일본에서 낙태한 태아도 「수자」라 하여 묘를 만들어 부모의 「죄의식」을 되새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가례의 「종교화」
기본적 생활질서에 관하여는 무엇보다 종교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과거 전통시대에는 주자가례가 관혼상제의 규율이 되었고, 어린이와 부녀자에게는 소학과 여훈이 생활질서의 기초가 되었다. 요즈음은 이런 전통적 생활질서는 멀찍이 밀려나고 예수가례, 부처가례라 할까 저마다의 종교교리에 따라 판이한 생활질서에 매여 산다. 우리 사회는 신앙이 넘치는 자들이 너무 많아 매사가 「종교화」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같다. 여기서 종교의 자유같은 해묵은 법리를 새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한국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 번쯤은 초연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번은 문상갔더니 목사가 고인의 애도에는 관심없고 마치 조객들을 전도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인양 장황한 설교와 기도로 의식을 진행하는 횡포를 꼼짝 없이 당해야 했다.
이것은 교회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도 거의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우스운 것은 중국에서도 왕족만 썼다는 봉분을 되도록 크게 쓰려는 데에는 거의 공통적인 것같다.
좁은 국토의 1%를 차지한 묘지로 인한 자연훼손이 심각한 정도에 이르러 다시 장묘제도의 개선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인 중국, 일본에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는 너무나 「확대지향」의 허례장묘를 아직도 답습하고 있다. 해방후 반세기가 지났건만 이런 장묘의 질서 하나 개선하여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것을 관철하려면 도덕적 신뢰성을 가진 강력한 정부가 표밭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과감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떳떳하지 못하게 돌아가니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겉돌며 미루어지고 있는 것같다. 그렇다고 우리는 백년하청 정부만 쳐다보고 있을 수 없고, 교회와 사찰등 종교단체와 사회운동체들이 자발적으로 연합하여 대대적인 국민운동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다.
○지혜모아 정돈을
교육이 변질되고, 종교가 저마다 창궐하고, 윤리도덕이 피폐해진 지금 우리의 생활질서를 가다듬기가 쉬운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를 부르짖고, 경제적 풍요를 누린다고 자유분방 아무렇게 살아도 좋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관습을 지킬 줄 아는 자만이 신사이다』라는 영국속담처럼 우리도 이제 관습을 쌓아나가는 가지런한 생활질서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천방지축 고삐풀린 망아지같은, 그리고 전봇대로 귓구멍을 후비든 말든 상관말라는 식의 벼락부자같은 속물근성을 이제는 뇌리에서 씻어내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보다 선진국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질서잡히고, 그 질서 속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사는지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대도시의 거리에 그 많은 종친회, 화수회, 친목회, 동창회의 간판들이 붙어 있는데 어떻게 생활질서는 더욱 혼란스러워지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라고도 생각되지만, 이러한 사회조직들이 마음만 고쳐 먹고 지혜를 모으면 우리 생활질서도 조금씩 정돈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종교단체들은 이제는 자기의 교세확장에 열 올릴 때가 지났으며, 우리 민족의 삶의 질과 질서를 가다듬는 데에 헌신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땅에서 무질서하게 산 자가 천당이나 극락에 갈 자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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