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 졸업 연 7,000명 “작가의 길 극소수”/작품값 올리려 경력쌓기 자비전시회 보편/대학,순수미술 편중 기획인력 양성은 뒷전/정부지원 확대·전시공간 확충 등 서둘러야『한국미술품가격이 세계적인 지명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것은 일부 화랑과 졸부들이 합작, 작품값을 뻥튀기한 결과이다. 또 지금까지 한국작가의 해외전시는 작품판매보다는 전시경력을 쌓음으로써 국내에서 더 비싸게 되팔기 위한 중간과정에 불과하다』 프랑스 「르 피가로」지의 기자며 미술평론가인 미셸 누리자니가 2∼7일 파리에서 열린 국제현대미술견본시장(FIAC)에 맞춰 르 피가로지가 내는 월간지 「보자르」 「테크닉 아트」를 통해 한국미술계의 비리와 병폐를 고발한 기사의 일부이다.
88서울올림픽 조각공원 건립에 관여한 이후 한국을 드나들며 「한국통」으로 알려진 그는 일부 한국화랑의 무분별한 작품구매에서부터 미대교수들의 입시부정에 이르기까지를 신랄하게 비판해 참가화랑과 작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올해에는 이 행사가 「한국의 해」로 정해진 상황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 잔치마당에 꼭 이렇게 비판을 해야 하느냐고 한국미술인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그는 우리 미술계의 고질적 병폐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미술인들은 이러한 문제가 교육제도의 허점, 작가육성과 관리정책 부재에 뿌리를 두면서 계속 악순환된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미술전공자는 전국 대학에서 한 해에 7,000여명씩 배출되고 있지만 순수미술에 편중됨으로써 전체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즉 회화, 조소전공자는 많지만 아직까지 예술행정전문가나 큐레이터를 양성하는 기관은 거의 없어 수준높은 기획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실정이다.
과다하게 배출된 작가들은 극히 일부만이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후 활동하고 대부분 1∼2번 전시회를 연뒤 작가인생을 마감한다. 전시경비가 최소 1,000여만원은 소요되는데다 전시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모전마저 특정학교 출신의 특정작가가 3∼4개씩 싹쓸이함으로써 기회를 박탈당해 상당수의 작가들은 많은 돈을 들여 국내외 개인전 경력을 쌓아 이를 발판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S대 서양화과를 나온 이모씨(39)는 『동기생 40여명 중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는 1∼2명에 불과하다』며 『그 경우에도 학원강사나 다른 부업을 하면서 5∼6년간 돈을 모아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나 뉴욕의 화랑이 작가를 초대할 경우 팸플릿 제작부터 홍보까지 모든 일을 대행해 주는 사례는 우리의 경우에는 꿈같은 일이다.
또 실험성이 강한 신인작가들에게 전시기회를 주어야 할 공·시립미술관은 「모험」을 하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대부분의 기업미술관들은 명맥만 유지할 뿐 적극적인 활동을 꺼리는 것도 작가들을 위축시킨다고 할 수 있다. 상업화랑의 경우도 상품성 있는 작가와 외국의 유명작가를 유치하는데 치중함으로써 국내작가의 활동반경을 좁게 한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전시회의 내용에 관계없이 개막초대일에는 어김없이 그럴 듯한 파티를 벌여야 한다. 개막일에 유명 미술계인사가 참석하거나 그들 명의의 화환이 전시장 입구에 세워져 있어야만 체면이 선다. 공연예술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의 미술계는 이처럼 가식과 과시에 길들여져 있다.
금호갤러리 큐레이터 박영택씨는 미술계의 껍데기 제거를 위해 정부가 문예진흥기금을 많은 작가에게 지원할 것과 시립미술관이나 기업미술관, 각 지방의 문예회관등을 전시공간으로 최대한 활용할 것을 촉구했다. 또 미술품값 안정을 위해 경매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파리=최진환 기자>파리=최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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