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근 블라디보스토크 영사 피살사건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수사가 사건발생 1주가 지나도록 뚜렷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연방보안국(FSB)을 비롯해 검·경 수사요원 2백여명을 투입해 수사를 벌이고 있지만 우리측에는 부검결과만 통보했을 뿐 수사방향조차 알려 온 것이 없는 상태다.정부는 이에 따라 러시아측에 중간수사상황에 대한 설명과 조속한 사건해결을 촉구키로 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최영사가 우리 외교관이며 그 신변보호책임이 주재국인 러시아에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이같은 우리 정부 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정부당국이 이것으로 그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러시아의 수사진척상황에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우리측 수사요원을 파견해서라도 우리 나름대로 알아볼 것은 없는지, 러시아를 도와 함께 할 일은 없는지 적극적으로 찾아 봐야 한다.
우리가 이처럼 최영사 피살사건의 조속한 해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이 사건 초기부터 북한의 개입 개연성을 시사하는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우선 발생시점이 북한의 대남 「보복」협박 직후라는 점이 그렇다. 현장에서 수거한 장갑도 체구가 작은 동양인이나 낄 수 있는 크기라는 것이 밝혀졌다.
현지에서 발행되는 블라디보스토크지의 보도는 이같은 북한인의 범행 가능성을 더욱 짙게 해주고 있다. 최영사 부검에 참여한 의사와 수사관의 소견을 종합하면 범행에 사용된 흉기는 연해주 지역 북한 벌목공이나 건설노동자들이 늘 몸에 갖고 다니며 쓰는 손도끼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범행 개입을 시사하는 것은 또 있다. 6일 우리 정부측이 확인한 수사첩보에 따르면 최영사는 피살 당시 북한의 마약밀매 루트와 평양 위조달러 제조창에 관한 정보가 적힌 메모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이런 결정적 단서를 6일 동안이나 무엇인지 모르고 가지고만 있었다는 것은 더욱 납득이 안된다.
우리가 러시아측에 아쉬워하는 것도 이런 점에 있다. 러시아는 범행에 사용된 흉기나 범행수법은 물론 이 메모쪽지까지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유력한 증거들을 일체 우리측에 통보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정부측의 안이한 일처리에도 책임이 있다.
러시아는 지금 공산체제에서 민주체제로 이행되는 과도 단계에 있다. 정부 각 기관의 관리들은 아직 우리보다는 북한에 친숙한 사람이 다수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정부기관에 우리측의 의사가 올바로 전달되게 하자면 몇 배의 외교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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