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들면서 문화의 달이라 하여 전국에서 문화축제들이 무더기로 펼쳐지고 있다. 해마다 지역 단위의 문화행사들이 자꾸 확산되어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소나기성 치레행사에 지방별 특성이 모자란다는 지적들이 있기는 하지만, 국민들의 문화의식 계발이 문화입국의 첫발이요 이런 것이 국민들의 문화욕구의 발로라고 한다면 우리나라를 문화대국으로 미는 큰 힘이 될 수 있다.그렇다고 해서 이런 축제들이 정부의 적극적인 문화시책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정부의 보다 열성적인 문화정책을 촉구하는 아우성의 표현이다.
현 정부가 문민정부라는 이름으로 들어섰을 때 문화창달에 대한 기대가 컸다. 군사정권이 무단정부라면 문민정부는 문치정부란 뜻이다. 문치는 문도와 문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이다. 그 바탕이 문화다. 문민은 그냥 군복을 벗는 것만으로 족한 것이 아니다. 국방색 대신 문화의 색깔로 단청된 정부라야 한다. 문민정부라는 말 속에는 그런 묵향이 들어있다. 과연 오늘의 정부가 그 이름에 값하고 있는가.
문치란 말은 예기에 보인다. 문왕은 문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문왕이문치)는 구절이다. 중국 고대의 주나라 문왕은 문치로 왕조의 기초를 세워 뒷날 유가가 이상형으로 삼은 명군이다.
전국시대 제일의 개명군주로 일컬어진 것은 부국강병과 문화정책을 일체화시킨 위나라의 문후였다.
우리나라의 역대 왕 가운데 세종대왕이 가장 성군인 것은 그의 문치때문이다.
문민정부는 들어서자마자 문화부를 문화체육부로 통합했다. 「작은 정부」가 명분이었지만 그때부터 기미가 수상했다. 통합으로 문화에 대한 집중력이 약화되는 것은 말할 것 없고 문화부라는 간판이 가지는 정책의지가 반조각이 되어버렸다. 그후 지금까지 이 정부의 문화시책은 뚜렷한 것이 한가지도 없다.
군사정권이라는 5공이나 6공(노태우 정권)은 오히려 문화에 열의가 있었다. 예술의 전당이라는 우리나라 문화시설의 얼굴을 만든 것은 5공이었고 국립예술종합학교라는 문화적 백년대계의 기틀을 세운 것은 6공이었다. 특히 6공은 정부에 문화부를 신설까지 했다.
구소련에서 음악·무용 등 예술문화가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 체제를 미화하기 위해 정부가 집중적으로 장려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군사정권이 문화에 추파를 던진 것은 체제의 도장일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문민정부는 아무 분장이 필요 없어서 문화를 등한시하겠다는 것인가. 문민정부의 얼굴은 가만히 있어도 문민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분칠을 하지 않아도 본 얼굴이 문화적인 것이 문민정부의 면상이라야 한다. 일반적으로 문화는, 특히 예술은 자유하에서 보다는 독재하에서 더 잘 길러진다는 부르크하르트의 가설을 문민정부가 증명해 내야 할 의무는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중앙박물관이 없는 한심한 나라다. 구총독부 건물 철거의 당위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어떤 형태로든지 중앙박물관은 문을 계속 열고 있어야 했다. 정치논리를 앞세워 민족의 문화사를 감금해버렸다. 일정시대에 바로 그 구총독부 자리의 광화문이 헐릴 때 일본의 양심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는 「잃어지려는 한 조선 건축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정치는 예술에 대해서까지 무례해서는 안된다』고 호통쳤다. 지금 우리 정치는 문화에 너무 무례하다.
정부는 삶의 질을 내세우며 올해를 문화복지를 여는 원년이라고 떠들었다. 그래놓고 새해 예산안에는 그나마의 문화복지 계획들이 대부분 괄시당하고 있다. 문체부의 문화예산은 월드컵 지원 등 체육의 체력에 밀려 문약해졌다. 문체부 통합의 무리가 드러났다.
정부는 2020년까지 우리나라를 문화선진국으로 만들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도상연습의 자유야 있는 것이지만, 지금의 걸음걸이로는 이것은 야심이라기보다 허영이다. 문화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같이 점프로도 들어갈 수 있는 골문이 없다.
올해의 문화의 달 표어는 「문화가 미래를 창조합니다」라는 것이다. 정부의 문화인식이 기특한 것 같지만 표어야 어느 것인들 몰라 못쓰랴. 문제는 정부의 문화마인드의 결여다. 이 허기를 달래느라 공허한 구호와 선언들을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남발하고 있다. 문민정부의 문치가 문치여서는 안된다.<본사 논설고문>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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