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외설시 공개 논란/미발표 초기작품중 포함돼… 인종편견 내용도/“새로운 조명 기회” “작가 의견대로 비공개” 대립영국의 대시인 T S 엘리엇(1888∼1965)의 미공개 초기시 40여편이 단행본으로 출판되면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책에는 그의 초기 대표작 「프루프록의 사랑노래」를 비롯해 수작으로 평가되는 시의 원형 외에도 노벨문학상 수상(48년)에 값하는 문학성과 달리 음란하고 외설적인 내용을 다룬 몇편의 시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 연구자들은 그의 문학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기회로 받아들이는데 반해 일부 문학인들은 출판을 바라지 않았던 엘리엇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당신만 갖고 있으시오. 절대 출판해서는 안됩니다』 1922년 34세의 엘리엇은 친구 존 퀸에게 140달러를 받고 자신의 시가 담긴 공책을 팔았다. 공책에 들어 있던 시들은 그의 사후 편지글 모음이 출간되면서 대여섯편이 공개되었고, 세속적인 시를 담은 그의 한 시집에 역시 몇 편이 소개되었다. 공책은 한동안 행방불명됐다가 60년대 말 뉴욕공공도서관에서 발견되었지만 그 속에 담긴 시를 읽거나 시의 존재를 언급할 수 있을 뿐 직접 인용이 허용되지 않았다. 출판을 꺼려한 엘리엇의 희망은 74년 동안 대체로 지켜진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런던에서 이 공책이 한 권의 시집으로 묶여져 나왔다. 방대한 주석이 붙은 「3월 토끼 이야기:1909―1917년」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나오면서 엘리엇의 초기 작품세계를 살필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문제는 그 시들 가운데 대여섯 편이 엘리엇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인종주의 색채와 외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5행시인 이 시들은 엘리엇이 반유대주의 등 인종적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는 일부 연구자들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집 출간과 함께 영미문단에서는 이런 작품을 출간할 이유가 「있다, 없다」로 의견이 분분하다. 엘리엇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한 영문학자는 『작가의 미발표작은 결국 공개되게 마련이다. 정말 출간을 원치 않았다면 그는 작품을 없애버렸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출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엘리엇의 부인 발레리 엘리엇은 정작 몇 년전에 이 시들이 출판되어도 좋다는 결정을 내렸다.
시집의 편집자는 『중요한 점은 엘리엇이 그것이 자신의 시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시집에는 올해 나온 여러 시인의 어떤 신작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뛰어난 시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내년 3월 「하콧 브레이스」에서 이 시집이 출간된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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