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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심의」한다지만(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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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심의」한다지만(사설)

입력
1996.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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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 사전심의 행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은 사실상 이 위원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영화 사전심의에 대한 찬반논의는 어느 쪽이 옳다는 사회적 합의가 아직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공륜이 이런 가운데 그나마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지키는 안전판 구실을 해왔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공륜을 국가기관으로 정의함으로써 공륜의 사전심의를 규정한 영화법 12, 13조는 판결이 있은 4일부터 그 효력이 상실됐다.비디오물에 대한 규제는 지난 6월의 음반 비디오법 개정으로 이미 고삐가 풀렸다. 여기에 이번 헌재 결정으로 영화마저 풀려 이제 우리사회는 모든 영상물의 제작행위는 물론 영화 수입과 판매, 상영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영화인들은 이번 판결을 쌍수로 환영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공륜이 말만 민간기구일 뿐 실제는 정부가 통제하는 국가기구로서 문민시대를 맞아 마땅히 폐지돼야 할 기구라고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 왔다. 사전심의 행위는 영화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자유민주주의 시대정신에도 역행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아무런 심의 없이 국내 극장에서 무슨 영화든 상영해도 좋을 만큼 지금의 우리 사회가 충분히 튼튼하다고는 영화계 스스로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공륜이 있었던 것은 영화계의 자율수준이 그만큼 믿음직하지 못했다는 일면도 있는 것이다.

수입된 음란·폭력 비디오가 우리 청소년에 미치는 해독은 이미 큰 사회문제의 하나로 일반에 널리 인식된 일이다. 그나마 그것은 볼 수 있는 공간이 제한돼 있다. 그러나 영화마저 아무 규제 없이 대도시 한복판에 대문짝만한 간판을 걸고 극장업자 마음대로 상영된다면 그 결과로 야기될 우리 사회의 윤리와 가치체계의 혼란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할 것이 분명하다.

이제 남은 것은 외설이나 폭력, 또는 이념성의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겨 상영을 제한하는 등급제 마련과 성인 영화 전용극장제 도입이다. 영화인과 사회 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자율규제기구의 설립과 법개정이 시급하게 됐다. 하지만 공익과 영화인들 간의 이해가 타협점을 찾자면 적지않은 논란과 시일이 소요될 게 뻔하다.

우리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 점이다. 판결문에 경과조치를 넣어 이같은 사회혼란을 막을 장치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허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공륜의 기능부터 먼저 부정한 것은 누가 봐도 사려깊은 판단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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