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그림은 좋은 작가가 만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작가의 기준으로 다음 네 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잘 그리고, 논리적이고, 생활태도의 3박자가 조화를 이뤄야 하며 작가의 근본이 리얼리티와 휴머니티에 닿아 있어야 한다.잘 그린다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표현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것으로 인식되겠지만 그것이 결코 잘 그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묘사와 색채감각이 뛰어나야 하고 균형감각, 절실성, 질료의 물질성의 문제등이 세련되게 구사되었을 때 잘 그렸다고 할 수 있다. 닮게 그리기는 쉽다. 시간만 투자하면 되는 묘사(판화기법, 대형사진 이용, 슬라이드 투사후 묘사등의 방법으로 누구나 가능하다)는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필력이나 조형성, 재질을 다루는 감각으로 잘 그리는 기술을 가늠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시대적 감각이나 이론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작가는 사회의 일원이며, 또 사회의 잉여물로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생산업에 뛰어들어, 출퇴근하며 땀흘리고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회, 역사, 민족, 동포애, 인류애등에 대한 감성과 이론의 뒷받침이 있을 때만 사람들에게 정서적 위안과 진보된 미적 경험을 전달해 줄 수 있다.
세 번째는 작가의 생활태도가 자기 작품과 얼마나 일치하는가가 기준이 될 것이다. 동양정신과 선을 말하고, 절제와 겸양을 표현하는 작품을 그리면서 작가는 안락한 승용차와 칵테일 파티나 즐긴다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일인가.
네 번째는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리얼리티와 휴머니티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작가가 얼마나 그 표현대상의 처지나 현상에 밀접한 애정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런 기준에 부합되는 작가가 만든 작품이야말로 좋은 작품이라 하겠다. 좋은 작가는 자기가 깨달은 만큼, 배운 만큼, 본 만큼, 더 나아가서 괴로워한 만큼 더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진정한 작가는 의도적인 타락을 하기도 한다. 진주처럼 빛나는 작품을 위해. 좋은 작품을 하기도 어려우나 좋은 작가가 되기도 어렵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은 어려울수록 빛이 나는 것인데.<권여현 서양화가·원광대 교수>권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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