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원에 선물공세/친지 등 구매강권지난해 봄에 열린 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는 대형 서점의 직원이 나와 있었다. 출판사가 참석자들에게 책을 나눠 주고 그 분량만큼 서점의 매출로 잡아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 뒤 이 책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됐다. 베스트셀러 조작의 새로운 수법이다.
베스트셀러 조작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표적 방법은 사들이기. 자사직원을 동원하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이며 최근에는 아르바이트 전문업체가 주로 이용된다. 일부 저자들은 친지를 동원하거나 지위를 이용, 기업체 대표등에게 구매를 강권한다. 한 대형 서점의 분야별 주간베스트셀러 1위는 200부선이며 종합 1위는 300부선. 요즘 인기있는 인문분야의 경우 10위는 40부선이다. 책값을 1만원으로 쳐도 200만원만 들이면 베스트셀러 1위가 만들어진다. 언론매체에 광고하는 것보다 적게 들고 효과도 커 일부 출판사들은 사들이기에 나선다. 최근 이런 방법으로 베스트셀러에 낀 책은 C출판사의 책 S, B출판사의 책 B 등이며 M출판사의 책 K는 이번 주 한 대형 서점의 분야별 목록 4위에 올랐다.
또 다른 방법은 출판사로 대량주문이 들어올 경우 대형 서점에 연결해 주거나 독자에게 책을 보내주고 서점이 판 것처럼 대금을 서점에 주는 것. 한 대형서점의 관계자는 『K출판사 책 400여권의 판매제의를 받고 2번 정도 목록에 올려준 적이 있다』며 『C출판사의 책은 사들이기가 심해 판매부수는 3위지만 10위로 끌어내렸다』고 말했다. 출판관계자들은 절반 이상의 출판사가 사들이기를 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주대상은 소설과 에세이분야라고 말했다. 베스트셀러에는 매장아가씨에게 스타킹을 선물하면서 순위에 끼게 하는 「스타킹셀러」도 있다.
87년 3,004개였던 출판사는 95년말 현재 1만1,571개사로 늘어났다. 미국에 이어 두번째다. 그러나 한 권도 출판하지 않은 곳이 77.9%인 9,014개사로 94년보다 1,509개사가 늘어났다. 1종만 낸 곳은 680개사로 실적있는 출판사의 26.6%나 된다. 출판협회의 임원이 경영하는 출판사마저 1년에 1∼2권을 내거나 아예 무실적인 경우도 있다. 만화를 제외한 95년의 발행종수는 2만7,407종. 하루 평균 80여종이 나온다고 할 때 절반인 40여종은 반품된다고 보면 된다. 1종에 1,000만원의 제작비를 감안하면 하루 4억여원의 책이 쓰레기가 되는 셈이다. 통계상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출판대국이다. 그러나 10권짜리 연작물을 10종으로 계산하는 통계놀음과 9,014개의 무실적 출판사수는 출판대국의 허상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폐해는 아류·모방출판. 개그맨 전유성씨가 컴퓨터책으로 성공을 거두자 연예인들을 동원한 컴퓨터입문서가 쏟아지고 영어회화책 「꼬리에…」가 인기를 끌자 인기인을 앞세운 회화책이 잇따라 등장했다. 구술하거나 이름만 내세운 경우가 많은 책들이다. 성공한 여성이나 정치인들의 자전에세이에도 그런 책들이 많다. 또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이 히트하자 「한 권으로…」의 이름을 앞세운 책들이 넘친다. 중복출판은 법적 제재가 가능하지만 모방출판은 제재규정이 없다.
책값은 외국에 비하면 싸지만 체감가격은 비싸다. 값을 올리려고 일부러 양장본으로 만들고, 판형을 줄여 두 권으로 나누어 낸다. 중고생이 주독자층인 책들은 팬시화경향을 반영, 볼륨을 줄이고 삽화를 곁들여 값을 높인다.
경영은 아직도 주먹구구식. 「감」에 의존한다는 것이 출판계의 정설이다. 출판사의 사장은 만능이다. 머리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호주머니가 곧 경리장부다. 교육부재도 문제다. 출판을 배울만한 기관이나 책이 없다. 돈을 까먹고 망해가면서 배우는 것이 출판이다. 젊은 출판인들의 모임 「오출모(오늘의 출판을 생각하는 모임)」, 「책만사(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회원간에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는다. 이밖에 남이 발굴한 저자 가로채기, 「없다」 「있다」 「살리기」 「죽이기」 등 제목 따라 짓기, 원저자의 인세를 광고료 명목으로 선점하는 일 등이 출판을 병들게 하고 있다.<여동은 기자>여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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