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때마다 신속 제휴 “무적자”/탄탄한 기술력에 합작 활용 신제품 만들어내산업용 로봇과 수치제어(NC)장치 등 공장자동화기기 종합생산업체인 일본의 파낙은 72년 일본 후지쓰(부사통)에서 독립한 이후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70년대 두차례 석유파동과 80년대이후 엔고로 큰 고비를 맞긴 했지만 그때를 제외하곤 매년 20∼30%의 경상이익률을 기록했다. 물론 파낙의 불황 극복능력이 뛰어났다는게 일본업계의 평가다. 비법은 무엇일까.
우선은 탄탄한 자체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제휴. 파낙은 74년 시장을 석권했던 전기·유압펄스식 서보모터에 대한 수요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첫번째 위기를 맞는다. 유가급등에 따라 모터에 사용되는 작동유의 가격이 덩달아 오르자 파낙제품의 이용을 기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보모터는 주어진 명령에 따라 일정한 각도만 회전하는 모터로 NC장치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부품. 파낙은 기름을 사용하지 않는 대마력 전기 펄스모터의 개발에 나섰다. 개발기간은 시장상황을 감안, 4개월로 정했다. 하지만 개발에 실패했다. 파낙은 곧바로 미리 섭외해둔 미국 게티스사와 전격 제휴했고, 이어 2개월만에 게티스사의 기술을 활용한 신형 NC장치를 출시, 시장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파낙은 이어 82년과 86년 불황과 엔고도 또 다시 매출감소를 겪는다. 70년대말 두번째 석유파동때는 관련업계가 불황타개를 위해 자동화설비투자를 늘리면서 이례적으로 호황을 맞았는데 불과 몇년만에 상황이 바뀐 것이다. 무엇보다 파이(시장)가 커지자 미쓰비시 야스가와전기 등 후발주자들이 무섭게 따라 붙은데다 수요자들이 어느 공작기계에도 설치될 수 있는 「범용성」 파낙제품보다는 가격과 기능을 차별화한 제품을 찾기 시작한 때문이다. 대미 통상마찰이 야기되면서 중요 수요처의 하나인 자동차업계가 설비를 축소하자 80년대중반이후 NC수요가 줄어든 것도 또 하나의 배경이었다.
파낙은 82년 GM과 제휴, 각각 지분 50%로 미국에 합작회사 「GM파낙로보틱스」를 설립했다. 당시 GM은 석유파동이후 일제 소형차에 밀리기 시작하자 ▲인력감축 ▲채산성없는 공장폐쇄와 동시에 생산체계 합리화를 추진, 자동화를 위한 NC공장기계나 산업용로봇을 대폭 도입하려 했고, 파낙은 NC기술을 활용한 산업용로봇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려 했다.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지만 파낙은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면서 미국시장공략에 필요한, 든든한 교두보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파낙은 4년뒤인 86년 GE와 합작회사를 세웠다. 이번 제휴는 NC와 로봇분야에 대한 수요가 단품형태에서 공장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하는 쪽으로 바뀌는 상황이어서 GE의 시스템분야 기술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 특히 파낙은 엔고로 인해 합작사를 통해 환차손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고려했다. 하드웨어분야에 뛰어난 파낙은 잇단 제휴로 컴퓨터를 활용한 NC인 CNC를 비롯, 인접부문의 기술적인 경쟁력도 확보해나갔다.
물론 전략적 제휴가 비결의 전부는 아니다. 도입기술 그대로 제품화해 판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전혀 새로운 차원의 제품을 개발하는등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것이나 엔고때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설계와 연구개발부문까지 절감책을 마련한 것 등도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 파낙의 연구소에는 보통시계보다 10배 빨리 돌아가는 시계가 걸려 있다. 한 개의 바늘이 6초에 한바퀴씩 돌아가는데 적시에 상품화시키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과감한 전략적 제휴와 신속한 제품개발」. 몇차례 불황에도 파낙을 적자없는 기업으로 만든 비결이다.<정희경 기자>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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