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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10월3일/김병국 고려대 교수·정치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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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10월3일/김병국 고려대 교수·정치학(한국논단)

입력
1996.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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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전에 통일의 날이 오리라고는 기대한 적이 없다. 내가 품어 본 꿈은 동과 서의 이산가족이 서로 만나고 싶을 때 만나는 조촐한 것이었다』 독일통일 기념일인 10월3일이 오면 다시 새겨 보는 어느 구서독 언론인의 말이다.서독은 통일운동을 벌여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동독과 이산가족의 상봉을 추진할 때조차 「통일」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만남이 언젠가는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시키고 대화가 결국은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큰 계획없이 서독은 자신의 통독정책을 구상하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시작되는 노래를 어린 시절부터 배우는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서독인은 통일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두 번이나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민족이 다시 통일에 나서다가는 주변 열강의 분노를 사서 분단보다 더 참혹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서독인은 자신의 꿈에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아예 지워버렸다. 게다가 서독은 민족통일의 미명 하에 사회를 처참한 전화의 대지로 내몰았던 나치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한 과거 탓에 서독에서 「민족」은 공포를 자아내고 「통일」은 독재와 전쟁의 시대에 대한 악몽을 되살리는 위험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서독인이 통일을 노래하지 않았던 까닭이 무엇인가는 자명하다. 그는 통일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아울러 통일운동이 파시즘을 부활시킬지 모른다는 우려 아래 자신의 통독정책을 단순한 대화와 만남의 수준에 묶어두려 하였다.

○독일역사의 반전

그러나 역사에는 언제나 반전이 있다. 통일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서독인에게 역사는 1990년 10월3일에 통일이라는 선물을 선사하였다. 역설적이지만 그 촉매제는 대화에만 만족하는 서독의 통독정책이었다. 서독이 통일을 포기한 마당에 동독이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서독과의 대화는 대화에 그칠 것이고 이산가족의 상봉은 단순히 만남으로 끝날 것이라고 동독정부가 충분히 착각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안심하고 실시한 대화의 채널을 타고 서독에 대한 정보가 동독사회로 퍼져나갔고 자유의 이념이 확산되었다. 그러한 정보와 이념이야말로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노출시키면서 동독의 공산체제를 부지불식간에 그 안에서부터 부식시켜 나간 통일의 일등공신이었다.

한국은 전혀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이간질시키기만 하면 적화통일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탈냉전시대의 북한을 「추락하는 비행기」로 인식하고 통일의 그 날을 희망반 공포반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일제강점의 아픔을 체험한 한국인에게 「민족」은 성스러운 것이고 통일신라 이후로 갈라져 본 적이 없는 한민족에게 「분단」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찬 비정상의 상태이다. 가능성과 당위성의 차원 모두에서 서독과는 달리 통일을 지상과제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통일의 시기를 늦추어 놓았다.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여야 할 시점에 한민족은 언제나 먼저 「통일」의 문제를 꺼내다 풀리지 않는 체제논쟁에 휘말리고 대화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렇다고 서독식 대화정책을 펼칠 수 있는 상황인 것도 아니다. 통일에 대한 열정은 한국인의 몸과 마음에 짙게 배어 있다. 서독식 대화정책을 선언한다고 해서 그 기저에 깔린 통일에 대한 한국인의 염원이 감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미 서독이 대화를 통해 통일을 달성한 이후에는 독일식 통일이 더이상 한국에게 대안이 되지 못한다. 북한의 기득권계층은 민주주의체제와의 대화가 대화로 그치지 않고 혁명을 낳는다는 사실을 독일통일의 과정 속에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북한의 기득권계층이 한국과의 대화에 응하고 체제의 개혁에 나설리 만무하다. 오히려 평화적 체제경쟁에서의 패배를 만회할 다른 길을 모색할 위험성이 적지 않다. 만성적 식량난 속에서 패배감이 팽배할수록 북한은 무력통일에 대한 환상에 더욱 젖을 것이다.

○통일열망과 환상

우리의 경우에 역사의 반전은 잔인하다.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강렬하기 때문에 통일의 날이 멀어지고 있다. 독일이 평화적 통일을 먼저 달성한 탓에 한민족의 독일식 통일이 어려워지고 북한은 무력통일의 환상을 버리지 못한채 공비까지 내려 보낸다.

한국은 남북대화가 자신을 독일식 통일의 길로 안내하리라는 꿈에 자주 젖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대화는 통일의 조건이 갖추어진 다음에 가능한 것이지 통일의 준비단계는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분단의 고통을 인내할 정신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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