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포고성 초강경」에 “일단 경계”/“궁지탈출용 습관성 전술” 관측도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과 관련, 2일 북한이 『반드시 보복할테니 미국은 간여하지 말라』고 「협박」함에 따라 남북관계가 또다시 초긴장 상태에 빠져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94년 3월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때보다 더욱 강경하고 「용의주도」한 것이다.
북한은 이날 상오 11시 판문점에서 판문점대표부 부대표인 박임수 대좌(대령)를 통해 주한유엔군사령부 정전위 비서장인 옴스 대령에게 이같은 폭탄발언이 적힌 쪽지를 몰래 전달했다.
비서장급 접촉에는 규정대로 우리측 장교(해병 대령) 1명이 유엔사 대표부 소속자격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북한은 우리측을 따돌리고 미국에만 몰래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쪽지 내용을 파악한 옴스 대령이 곧바로 이를 되돌려주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긴 했지만 북한의 이같은 엄포나 그것을 전달하는 수법이 예사롭지 않게 받아 들여지고 있다.
우리측에 대해서는 가히 「선전포고」와도 같은 협박인 동시에 미측에 대해서는 한미공조관계를 시험 또는 이간질하려는 저의가 숨겨져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유엔사는 이날 하오 비서장급 접촉결과를 공식 발표하면서 북한이 보복 운운한 대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은채 보다 완곡한 표현을 사용해 대조를 보였다.
북한의 협박이 실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인지 아니면 어려운 국면을 모면하려는 「공갈성」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무장공비 침투로 명백한 도발행위가 만천하에 탄로나 궁지에 몰린 상황임에도 불구, 북한이 이처럼 초강경 자세로 나왔다는 점에서 일단 경계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지금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생한 최덕근 영사 살해사건에 북한이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북한은 궁지에 몰릴 때마다 대화나 협상을 택하기 보다는 이른바 「벼랑끝 전술」을 구사, 정치·외교적 탈출구를 모색해온 만큼 이번에도 그같은 공갈·협박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북한이 11월 미대선을 겨냥, 초 강공책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한국을 따돌린채 대미협상에서 실리를 얻겠다는 고도의 계산된 술책이라는 것이다.<홍윤오 기자>홍윤오>
◎국방부·합참 표정/국감중 보고받고 “비상”/이 국방 김 의장 청와대·미군측과 대응 논의/“엄포 아닐 가능성” 도발징후 감시목록 확대
북한이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관련, 『반드시 보복하겠다』는 협박을 한 사실이 알려진 2일 하오 국방부와 합참에는 또다시 비상이 걸렸다.
이양호 국방장관과 김동진 합참의장은 이날 하오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답변을 하던중 이같은 사실을 보고받고 국방위원들의 양해를 얻어 급히 감사장을 떠났다.
이어 이장관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지침을 시달받았고 김의장은 존 틸럴리 주한미군사령관과 만나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긴급 논의했다.
당초 국방부는 이날 유엔사와 북한간의 비서장급 접촉에 대해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공비침투사건에 대해 북한이나 유엔사나 기존입장들을 되풀이 하는 선에서 접촉이 끝날게 뻔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 합참 간부들은 국정감사에만 매달려 있다가 이장관 등이 청와대로부터 호출을 받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 서두르기 시작했다.
긴급 간부회의가 소집됐고 전군에 대비태세강화 지시가 내려졌다. 합참은 다양한 형태의 북한 도발을 사전에 감지하기 위해 마련중인 2백여가지 이상의 「도발 징후목록」수를 확대, 더욱 세세한 징후까지 목록에 포함시켰다.
국방부와 합참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를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다』면서 『북한이 반드시 모종의 일을 벌일 것 같다』고 우려했다.
◎정전위 접촉 표정/북 시종 거친 태도 “험악”/북 대표 “미 간여말라” 영문쪽지 몰래 전달에/유엔사 옴스 대령 “더는 협상못해” 자리떠나
2일 상오 11시 판문점에서 주한유엔군사령부(UNC)와 북한간에 열린 정전위 비서장급 접촉은 시종 「험악한」 분위기였다.
이날 접촉에는 규정에 따라 유엔사측에서 정전위 비서장인 옴스 대령과 정전위 연락장교들인 한국측 팽재근 대령과 필리핀 장교 및 통역요원 등 5명이, 북측에서는 박임수 대좌(대령)와 유영철 중좌(중령) 등 4명이 참석했다.
회의 서두부터 북한측은 거친 태도로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언급, 『잠수함은 훈련중 좌초됐으며 즉시 문제의 잠수함과 승조원 및 사체들을 송환해 줄 것』을 요구하며 목청을 높였다.
이에대해 유엔사측은 『이번 사건이 명백한 무장도발이자 정전협정위반임을 입증하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일축한뒤 사과 및 재발방지 등을 거듭 촉구했다.
한동안 비슷한 내용의 설전이 오간뒤 박은 옴스 대령에게 『조용히 할 얘기가 있으니 잠시 옆방으로 가자』고 제의했으나 옴스 대령은 『유엔사측 대표 자격으로 나온 내가 왜 따로 가서 얘기해야 하느냐』며 이를 거절했다.
순간 회담장 분위기가 더욱 「썰렁」해지는 가운데 박은 영문으로 된 메모쪽지를 옴스 대령에게 몰래 전하려 했다. 『남조선측이 인민군을 사살하는 것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으며 반드시 보복(Retaliation)하겠다. 미국은 더이상 간여하지 말라. 만약 이에 개입하면 미국에 대해서도 보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옴스 대령은 상기된 표정으로 즉시 쪽지를 되돌려주면서 『이번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앞으로 당신들과 어떠한 협상이나 대화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뒤 일행과 함께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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