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금융계 “무서운 신예”/촉망받던 과학도서 은행가 변신 초고속 성장러시아는 현재 상업은행의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구소련시절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던 금융기관은 시장경제 도입 5년여만에 크고 작은 상업은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수천개를 헤아리고 있다. 그러나 정치 경제적 혼돈상황을 반영하듯 상업은행들의 부침도 잦은 게 러시아 금융계의 현실이다.
차스트느이 방크 총재 보리스 김씨(31)는 이처럼 취약한 러시아 금융계에서 무서운 신예로 꼽힌다. 실제로 차스트느이 방크는 그 동안 자산이 40억루블(80만달러)에다, 총운영자산이 무려 1,000억루블(2,000만달러)로 40배 이상 늘어나고 직원도 100명대를 넘어서는 등 급성장을 계속했다. 김총재도 동포사회의 노브이 루스키(신 러시아인)로 떠올랐다.
그의 금융계 진출은 도박에 가까운 것이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 준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그는 88∼93년 독일 프랑스 영국을 순회하면서 연구생활을 한 촉망받는 과학도였다. 은행 설립을 구상하던 92년 8월만해도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핵센터, 뉴질랜드의 웰링턴대학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아놓고 있었다.
그러나 서방세계에서 보고 느낀 금융기관의 필요성과 비중, 성장가능성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 러시아에서는 이미 기술 과학계통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초청장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뒤 금융계에 뛰어들자고 친구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은행설립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까다로운 정부 관료들을 상대하며 자금을 모으고 유능한 인재를 초빙하는 일 어느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가까스로 구소련의 각료회의 조직부장 출신인 보리스 바차노브이를 비롯해 소위 노멘클라투라(특권계층) 몇사람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의 차스트느이 방크가 있기까지 이들 원로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고 김총재는 고백한다.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한번도 방문하지 못한 아버지의 나라를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뿌리의식도 강하다.
65년 우즈베크의 우르겐치에서 태어난 김총재는 러시아인 어머니를 따라 러시아 남부 감보프로 이주,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85년 모스크바 국립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원에 입학했었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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