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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달에 짚어본 문화 허상(껍데기는 가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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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달에 짚어본 문화 허상(껍데기는 가라:1)

입력
1996.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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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 번지르르 「속빈 문화」 범람/구호·장식에만 치중 이제 그만/지나친 상업성 「거품」 양산 심각10월은 문화의 달. 올해의 표어는 「문화가 미래를 창조합니다」. 지난 해의 표어는 「일등나라 일등국민 문화가 만듭니다」였다. 지난해 무역의 날(11월30일) 표어도 「세계로 문화로」였다. 저마다 문화의 중요성과 효용성을 강조하는 시대이다. 국제경쟁력시대, 세계화시대에 문화는 다행스럽게도 산업의 창조자, 정치의 동반자, 사회의 정화자로 인식돼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문화진흥의지는 여전히 미약한채 지금 우리의 문화에서는 껍데기가 행세하고 거품이 들끓는다. 문화는 아직도 장식품이거나 치장물일 뿐이다. 생산, 유통, 소비에 이르는 문화물류의 전과정이 상업성에 오염돼 찰나적이고 표피적인 문화가 번져간다. 90년대 들어 대중과 상업자본이 문화권력을 장악하면서 「기계와 소음과 속도의 문화」가 양산되고 있다.

각종 공연은? 집안잔치이다. 초대손님 일색인 관객을 모아 너도 나도 제 돈 들여 귀국공연을 한다. 저마다 솔리스트를 지향하는 문화풍토 때문에 앙상블정신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예술교육자도 자라지 못한다. 외국유명단체 모셔오기 개런티경쟁으로 한국의 공연시장은 속된 말로 봉이 됐다.

문학은? 올해에도 노벨문학상의 계절이 다가왔지만 세계에 내놓을 작품이 있는가. 있다 해도 제대로 번역되었는가. 2백개도 넘는 문학상은 과연 문학발전에 제대로 기여하고 있는가. 베스트셀러는? 광고가 만들어낸다. 그리고 조작된다. 기획력 부재의 주먹구구식 출판이 주류를 이루고 1년동안 한 권도 책을 내지 않은 출판사가 75%나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외형상 세계 10위권의 출판대국이다.

미술은? 1백여개 대학에서 해마다 7천여명의 미술전공자가 배출되지만 예술행정이나 이론전공자는 거의 없다. 대다수가 1∼2번 개인전을 연뒤 작가활동을 마감한다. 작품값만 세계 최고수준이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도 국내작가와의 작품가격차가 커 국내활동을 꺼린다.

비평은? 자기 그룹, 자기 사람 키우고 두둔하는 이른바 「주례사비평」이 득세하면서 온당하고 매운 비판이 사라져간다. 상업성의 잣대가 곧 진실이다.

이 시대의 문화는 예술로서의 성공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희망한다. 매우 힘들거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내실없는 예술은 두 가지의 성취를 위해 껍데기를 포장하고 실체를 흐리기 위해 거품을 만들어낸다.

정부는 91년부터 해마다 문화예술의 해를 운영해왔다. 연극·영화의 해, 춤의 해, 책의 해, 국악의 해, 미술의 해에 이어 올해는 문학의 해이며 97년은 문화유산의 해이다. 매년 갖가지 사업이 벌어졌으나 이벤트 위주의 전시성 행사로는 진정한 문화인이나 성숙한 문화국민이 되게 할 수 없다.

진실과 진정성이 몰각된 오락으로서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개방적 담론을 내세워 이제부터 할 일은 성뿐이라는 것처럼 성에 줄을 댄 문화가 판을 친다. 상업성에 기대거나 성을 매개삼아 벌이는 한 판의 일회성 잔치―이것이 우리 문화의 내실없는 얼굴이다. 신동엽 시인은 이미 60년대에 「껍데기는 가라. 한라부터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고 외쳤다. 이제 우리는 문화에 대해 「껍데기는 가라」고 외쳐야 하지 않을까. 설령 그것이 즉효없는 주문이라 할지라도. 구호로서의 문화, 장식품으로서의 문화는 가라.<임철순 문화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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