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문학의 해」인 것은 문학의 해가 아니더라도 늘 하고 있는 행사들이나 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문화예술에 대한 진흥책의 하나로 해마다 한 분야씩을 선정하여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연극·영화의 해, 국악의 해, 무용의 해, 미술의 해 등을 지나오면서도 모두 일과성 행사나 단발성 잔치에 그치고 말았다. 한가지도 남긴 것이 없다. 3개월밖에 남기지 않은 금년 문학의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문학의 해는 이런 해가 아니고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기반사업들의 기점이 되기 위해 있는 것이다. 문학은 1년초가 아니다. 한해동안의 거름으로 다 자라지 않는다. 우리 문학을 큰 문학으로 키우기 위한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들이 올해 시작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문단의 당면과제는 무엇보다도 민족문학의 세계화다. 요즘 세계화가 유행가처럼 노래되고 있지만 우리 문학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는 일이 먼저다. 문학이 앞장서면 안 따라 가는 것이 없다. 문학의 세계화는 나라 전체를 세계화하는 선도역이 된다. 문학은 언어가 원자재인 제품이다. 그만큼 국경의 벽을 넘기가 어렵지만 또 그만큼 민족적인 것이기 때문에 세계화의 선봉이 될 수 있다.
문학의 해는 우리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획기적인 전기로 삼았어야 했다. 번역지원의 기금을 늘리는 것도 좋지만 외국어로 번역되어야 할 작품은 반드시 번역이 되고 출판이 되고 광고가 되도록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기구의 설립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우리 상품을 해외에 선전하듯 조직적인 홍보전략도 필요하다.
문학을 세계화하자면 사실 먼저 문학이 국민화되어야 한다. 민족문학이 국민정신으로 애호되고 육성될 때 그 역량은 세계적인 키 높이로 자랄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국민적인 관심이 모자란다. 우리 문학은 저절로 커왔다. 자생적으로 이만큼 성장한 것은 대견한 일이다. 문학이 재배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풍토에 크게 영향받는 것이고 문학의 풍토는 국민정신이 조성하는 것이다. 우리 문학풍토의 박토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는 문학박물관을 들 수 있다.
역사가 있는 곳에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역사의 진열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위광을 통해 새로운 역사 창조의 에너지를 창출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는 우리 문학사를 일당에 총집결시킨 문학박물관이 아직 없다. 그렇다고 문학인 개개인의 기념관이 줄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박물관이 없다는 것은 역사가 없다는 말이나 같다. 고전문학은 차치하더라도 우리의 신문학 90년의 역사가 어느 지붕밑에 안주하지 못하고 원혼처럼 유랑한대서야 새로운 문학이 깊은 뿌리를 내리기가 어렵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는 큰 문학이 심호흡을 할 수 없다.
문학박물관이 모범적인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에는 전국을 통틀어 문학박물관이 25개나 있다. 이와는 별도로 작가별 기념관은 50개가 넘는다. 문학박물관은 도쿄의 일본근대문학관 외에 웬만한 현마다 또 지방따라 따로 있어서 자기 고장 출신의 문학인들을 기념한다. 도쿄의 코마바(구마)공원 안에 도쿄도근대문학박물관과 나란히 있는 일본근대문학관은 1967년에 신축한 것으로 100만점의 자료가 수집되어 있다. 그리고 가령 이즈(이두)반도에 있는 이즈근대문학박물관에는 이 지방 출신의 작가인 이노우에 야스시(정상정)의 생가를 통째로 옮겨다 놓았다. 문학인의 집을 보존하고 작품의 무대를 기념하고 박물관을 세우고 하는 일은 근대문학사 120년정도의 일본이 문학의 전통이 훨씬 깊은 구미의 어느 나라보다 더 극성이다. 일본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두사람이나 낸 것은 이 국민정신이 밀어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문학의 해는 바로 이런 것에 착목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작가들의 연고지에 기념 푯말을 세우는 일이 이제 겨우 시작된 단계고 개인별 기념관의 확산은 아직 요원하다면 한국 문학박물관을 연차계획으로 세워 우리 문학사의 영광을 한자리에 모아야 한다.
문학박물관 뿐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한국문학사전 하나도 완전한 것이 없고 일본에서는 전 17권짜리 문학사가 나오고 있는데 한국문학사는 아직도 단권짜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 문학의 부피가 이렇게 빈약한 것일 수 없다. 문학의 해는 이런데도 관심을 가졌어야 옳다. 이런 것이 우리 문학의 국민화 운동이요, 나아가 세계화의 발판이다.<본사 논설고문>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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