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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는 언제쯤” 우울한 한가위/연천·파주·철원 수해현장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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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는 언제쯤” 우울한 한가위/연천·파주·철원 수해현장 르포

입력
199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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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용품 겨를없이 당장 끼니걱정 한숨/건축비 급등에 융자조차 어려워 주택보수 차질/장비없어 추수 못해,중기들 태반 임금체불 울상7월말 경기북부 강원영서 일원을 할퀴고 간 수마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제사상에 올릴 햇곡식과 햇과일을 흙더미에 묻어버리고 집도 절도없는 처지가 된 채 맞게 되는 올해의 추석은 수해민들의 가슴을 더욱 쓰리게 한다.<편집자 주>

▷경기 연천·파주◁

경기 연천군 연천읍 일대 주민들은 조상의 제상에 올릴 제수용품 걱정을 할 겨를이 없다. 당장의 끼니와 겨울을 날 걱정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연천군에서 지난 수해로 피해를 본 가옥은 모두 692채에 이르나 이날 현재까지 복구가 마무리된 곳은 고작 30%선에 불과하다.

나머지 70%의 주민들은 아직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천막이나 반쯤 부서진 가옥의 한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청하고 있으며 집을 새로 짓고 있는 주민들은 군에서 지급한 텐트에서 살고있다.

집과 농경지를 잃은 주민들은 한결 같이 보상금이나 융자금 지원을 소망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다. 집을 잃은 수재민들이 집을 다시 지을 경우 정부 보조금 540만원과 특별위로금 300만원, 융자금 1,080만원 등 모두 2,000여만원까지 지원되고 있으나 이제껏 지원받은 돈은 피해가구당 평균 180만원이 고작이다.

나머지는 공사 진척도에 따라 지급되고 있고 그나마 융자를 받기 위해서는 담보와 보증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빛좋은 개살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주택신축 물량이 늘어나자 8월초까지만도 평당 150만원하던 건축비가 170만원으로 올라 수재민들을 울리고 있다.

침수피해가 컸던 파주시 문산지역은 문산초등학교 체육관에 남아 있는 이재민 7가구를 제외하곤 거의 생업으로 복귀했다.

도로변 상가들은 대부분 복구를 끝내고 문을 열었지만 돈이 말라 경기가 썰렁하다. 보상금이라도 나오면 경기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늑장행정으로 그역시 헛일이다.

문산시내에는 「내지역 농산물과 상품을 사주어 지역경제를 살립시다」는 호소조의 현수막이 수해로 찢긴 지역경제의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다.

41개 피해 중소기업체가운데 대부분은 긴급자금을 투입, 응급복구를 끝낸 뒤 재가동에 들어갔지만 추석보너스는 커녕 임금조차 못주는 기업들이 태반이다.<연천·문산=이년웅 기자>

▷강원 철원◁

하루 1,850원에 불과한 구호비로 끼니를 때우는 이곳 수재민들에겐 추석은 하나도 즐겁지 않다. 국고나 지방비로 생계지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공공시설보수위주로 돈이 지원되고 있으니 영문을 알수가 없다.

마을 전체가 완전 침수됐던 갈말읍 정연리 68가구 주민과 106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한 김화읍 청양3리 주민들은 당초 요구대로 집단이주가 결정됐지만 주택 신축에 따른 빚 걱정으로 이주를 망설이고 있다.

주민들은 15평기준으로 국가보조 840만원과 융자 1,080만원으로 이주단지에 새집을 마련하는 것은 좋지만 늘어날 부채가 두려운 데다 담보능력이 없는 일부 주민은 이주를 반대하고 있다.

특히 벼 수확을 해야 하지만 콤바인이 부족하고 농기계업자도 유실된 폭발물을 우려하며 작업을 거부하는 등 2중고를 겪고 있다.

수해때 285기의 묘지 손실 피해를 본 동송읍 이평리 주민들은 대부분 묘지 복구를 하지 못한 채 착잡한 마음으로 추석을 맞고 있다.

또 국공유지와 하천터라 집을 지을 수가 없는 37가구와 도시계획선에 묶여 건축이 불가능한 2가구 등 39가구는 복구를 포기하고 5.5평 크기의 조립식 건축물에서 생활하거나 월 10만원의 지원금으로 기약없는 남의 집 살이를 해야 할 처지다.

이밖에 군 전체 논면적 1만1,050㏊가운데 2,525가구 7,297㏊의 논이 유실·매몰되거나 침수됐지만 농작물 및 농기계에 대한 피해는 보상기준에서 제외돼 있어 주민들은 이래저래 우울한 추석을 맞고 있다.

이곳 수재민들은 『차라리 추석이 아니면 옛날 생각은 안할 것』이라며 『그래도 냉수라도 떠놓고 조상의 음덕을 기려야 하지 않겠냐』고 허전한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철원=곽영승 기자>

◎철원 잠곡리 임도 붕괴 현장/인재처리 보상 요구 2개월째 산위농성/“내려가라는데 갈곳 없어요”

강원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 주민대표 들은 지난달부터 산사태를 유발시킨 해발 800m의 임도붕괴현장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주민들은 추석차례를 산에서 합동으로 지낼 계획이다.

농성장 바로 앞. 임도가 무너지면서 생긴 절벽아래로 바위 나무 토사 등이 뒤엉킨 폭 20∼80m의 계곡이 붕괴된 잠곡댐까지 3∼4㎞ 이어져 있다.

이계곡이 2개월전만해도 이들의 문전옥답이었다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 자신들의 주장을 적은 달력조각과 광목플래카드를 새끼줄에 내걸고 절개지 암벽에 페인트로 구호를 적긴했으나 난생 처음인 「농성」인지라 어설프기 짝이 없다. 이들 중에는 노인과 아녀자들이 상당수여서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지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버티고 있다. 한 할머니는 『젊은이들이 건강을 걱정해 내려가라고 하지만 갈 집이 없는데 어디로 가는가』라며 눈물을 흘렸다.

주민들은 산림청이 92년부터 개설한 27㎞ 임도의 120군데가 무너져 산사태를 유발했으며 임도개설당시 쌓아논 바윗덩어리와 잘라낸 나무들이 한꺼번에 쓸려내려가면서 계곡의 농경지가 유실·매몰됐다고 주장한다. 또 계곡에서 내려온 바위 등이 산 아래쪽에 건설중이던 잠곡댐으로 유입, 하상이 높아지면서 댐이 넘쳐 댐붕괴의 직접 원인이 됐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이유로 잠곡리 수해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인만큼 자연재해법에 의한 복구비 지급대신 재난관리법에 따라, 실질배상을 해달라며 농사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팔자에 없는」농성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철원=곽영승 기자>

◎정부 지원·복구 어디까지/착공못한 피해주택만 40%/이재민 구호예산 71% 수재의연금에 의존/내무부선 추석위로금 등 보상금 75억 지급

정부의 조기 수해복구 다짐은 어디로 갔나. 국민들의 정성을 모은 수해의연금은 어디에 쓰이고 있나.

최근 내무부는 「미관」과 겨울나기를 고려, 수해민들의 생활터전인 천막을 철거하고 컨테이너 박스로 교체토록 지시했다. 이같은 처사에 연천읍 등 8개읍면 수재민 대표 150여명은 24일 연천군청에 몰려가 복구를 늦추려는 의도라며 항의 시위를 하기도 했다.

파주 연천 등 경기북부 수해지역에는 융자금이외에 이재민 장기구호금(31억8,042만원), 침수주택수리비(45억2,700만원), 세입자보조금(3억9,600만원), 주택복구비(42억3,090만원), 특별위로금(66억2,450만원), 추석 및 월동기 특별위로금(48억3,836만원등)등 모두 237억9,718만원이 배정됐다.

국비와 지방비로 충당되는 공공시설복구비(113억5,518만원)와 특별양축자금(융자) 등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수재민에게 주어지는 지원금은 재원별로 수재의연금이 71.8%인 170억8,801만원을 차지하고 국비와 지방비(도비)는 각각 11.6%와 4.1%에 불과하다. 이재민 구호예산을 국고가 아닌 의연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지원금이 실제 복구비용에는 턱없이 부족한데다 각종 서류미비 등을 이유로 지급이 늦어져 24일 현재 총지원금의 60.9%인 144억9,983만원만 지급된 상태다.

주택복구비는 피해정도와 무허가건축물 확인등 각종 서류보완 등으로 파주시와 연천군은 각각 54.6%와 75.1%만 지급됐고, 세입자보조금(300만원이내)은 전세여부 확인 등으로 피해 주민중 연천군 15.8%, 파주시 50%만 받았다.

이처럼 미미한 지원금과 늑장지급등으로 복구작업도 늦어져 피해주택 1,011동(전파 556동, 반파 455동)가운데 247동만 복구가 완료되고 356동은 공사중이거나 설계단계에 있다. 40.4%인 408동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한편 내무부는 25일 현재 경기 강원지역의 피해주택(1,551가구)중 349가구가 이미 복구가 완료됐고 381가구는 복구를 위한 공사에 들어갔으며 나머지 821가구는 신고에 따른 복구설계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재민의 추석특별위로금(세대당 30만∼50만원)과 월동대책비(세대당 30만원), 연료비(12만∼24만원)등의 비용으로 서울 및 인천 경기 강원지역 피해자 주민에게 모두 75억5,800만원의 보상금을 이미 지급했다고 밝혔다.<이년웅·정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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