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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순희와 공비/유석근 체육부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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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순희와 공비/유석근 체육부장(메아리)

입력
1996.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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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공비들의 동해안 침투소식에 놀라면서 순간적으로 많은 북한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생생한 것은 계순희의 모습이었다.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일본 여자유도의 영웅 다무라 료코를 시종 몰아치고 완승, 세계를 놀라게 한 17세 무명소녀 계순희.

우리 국민들은 TV 앞에서 밤을 새우며 계순희를 응원했고, 세계무적이라는 상대에게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그의 당당함에 통쾌함을 느꼈었다.

계순희의 가슴에 달린 인공기도 동포의 정을 느끼는데 아무런 방해물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91년 일본 지바서 남북단일팀을 이뤄 세계를 제패한후 현정화와 한동안 부둥켜 안고 석별의 눈물을 흘리던 여자탁구선수 이분희.

91년 포르투갈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 역시 단일팀으로 출전, 한반도기 아래서 호흡을 함께 했던 어린 축구선수들. 스포츠무대에서 북한의 얼굴로 활약하다 지난달 IOC위원에 선임된 장웅. 91년 평양방문때 「선생님, 임수경을 살려주세요」라며 기자의 두손을 잡고 매달리던 냉면집 여종업원들.

취재현장에서 이들을 만나면 남과 북의 사이에 이념의 벽은 있어도 하나가 될 날이 멀지 않음을 느끼곤 했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축구를 유치하면서도 북한과의 분산개최를 염두에 두었고, 월드컵이 남북한 관계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한국이 북한의 애틀랜타올림픽 출전 경비를 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93년 이후 문을 걸어 잠갔던 북한 스포츠를 세계무대로 끌고 나오는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이제는 망연자실할 뿐이다.

이제 다시 만나면 10년전의 논쟁으로 되돌아 가야 할 것인가.

「공비 남파」 얘기가 나오면 즉각 「조작」 운운하며 핏대를 올릴 무지한 그들.

『유선생, 옛날에 우리를 깎아 내리는 조작기사를 썼던데 이제 서울 돌아가면 이런 거 안쓰겠디요?』

평양에서 개성으로 오는 기차안에서 기자가 7년전 쓴 기사를 내 보이며 은근히 겁을 주었던 이 안내원도 다시 만나면 「공비 사건은 남쪽의 조작」이라며 가슴을 쳐 댈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숨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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