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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의 풍경」(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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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의 풍경」(영화평)

입력
1996.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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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처럼 혼탁한 삶 조명… 현대인의 절망·공허 묘사그리스의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현실과 신화의 세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소재를 통해 그리스 현대사의 전환점과 사회 현실을 포착한다. 그의 영화들은 고통과 절망이 뒤섞여 있는 환경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언제나 꿈의 추구를 잃지 않는 캐릭터들을 그려낸다.

역사와 사회, 인간 사이의 어우러짐을 바라보는 감독의 관점은 객관성을 담보하는 카메라 시점의 서정적 영상으로 반영되고 있다. 가공된 시간과 공간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세계를 응시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앙겔로풀로스 감독은 현실 상황과 인생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을 전통적 구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의 단면들을 논리성에 매이지 않고 시적 감성의 영상으로 그린다.

88년도 작품인 「안개 속의 풍경」은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감독상과 유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독일로 여행을 떠나는 어린 남매 불르(타니아 팔래오로구 분)와 알렉산더(미칼리스 제크 분)는 여행길에서 세상의 위험과 아픔, 도덕적 타락을 경험하게 된다.

감독은 그 여정을 통해 그리스 현대 사회의 절망과 공허함을 풍부한 상징적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다. 또 안개속 같은 혼탁한 삶 가운데도 희망과 구원의 이상향을 갈구하는 우리의 내면세계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이 풍경을 양식화하여 등장인물과의 관계를 표현했듯이 이 감독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풍경 속에 남매가 겪는 경험의 단편들을 위치시켜 영화의 의미를 획득한다. 고정되어 있거나 유려하게 움직이는 카메라는 긴 호흡의 시간성과 화면에 깊이감을 주는 공간성을 수반한다.

아울러 눈에 보이지 않는 화면 밖 공간과,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영화의 결말은 관객을 영화읽기에 적극적으로 동참시킨다. 차분한 감동을 주는 이 영화는 절제되고 섬세한 영상과 품격있는 음악으로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편장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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