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건물은 유리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 때론 모자도 쓰고 외투도 걸친다』건축물들이 점차 기능중심에서 벗어나 독특하고 다양한 모습과 형태를 연출하며 패션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건축의 대원칙이 완전히 깨져버린게 요즘 건축의 주된 흐름이라고 설명한다.
대저택이 즐비하게 들어선 용산구 한남동 한복판. 독수리가 비상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우원디자인 사옥은 대번 눈길을 끈다. 건물이 앞면 옆면 윗면 할 것 없이 온통 유리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5층의 스튜디오 외관은 막 비행을 시작하려는 비행접시 같은 이미지를 풍기고 그 내부공간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나」라는 인물이 회개하고 살아나온 고래 뱃속을 연상시킨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레스토랑 건물 「아사도」는 점잖은 신사가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또 강남구 청담동 두손디자인 빌딩도 건물 앞면 위에 마치 골프모자를 연상시키는 구조물이 얹혀 있다.
강남구 대치동 대치아파트촌 옆에 있는 은진사옥은 하늘색 글라스 몸통 위에 흰색 패널의 재킷을 걸친 듯한 상쾌한 느낌을 준다.
이처럼 요즘 건물의 두드러진 특징은 앞면이 중시되면서 다양한 장식과 디자인이 건물 앞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장식의 소재로는 유리가 많이 쓰인다. 유리는 이제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소통시키는 창의 역할을 떠나 외부를 꾸미는 장식역할을 하고 있다. 유리가 장식품화하면서 빨강 파랑 노랑등 원색계열의 컬러유리들이 건축소재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 다른 트렌드는 건물 겉면의 색상이 화려해진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회색계열의 건물이 주류를 이뤘으나 요즘은 빨강 파랑 녹색 등의 원색을 뒤집어쓴 건물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요즘은 건물의 외부만을 보고 내부공간을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건물의 안과 겉이 제각각 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경향은 콘크리트나 철근 대신 철골조·유리 같은 간편한 건축소재가 나타나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내부공간의 가변성이 높아지면서 파격적인 공간구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건물패션화에 반발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노출 콘크리트기법도 “독특”
외양에 치중하는 요즘 건축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출발한 노출 콘크리트 기법은 외롭지만 하나의 독특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건축물의 패션화를 젊은, 미국 유학파가 주도하고 있다면 건축 패션화에 반기를 든 노출 콘크리트 기법은 중견 건축가, 그들 중에서도 교수 출신들이 주도하고 있다.
노출 콘크리트 기법이란 말 그대로 자갈 모래 시멘트 물 등을 섞은 건축의 기본자재인 콘크리트를 건물을 마감할 때 그대로 노출시키는 기법을 말한다. 담백하고 솔직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건물 그대로를 보여주는 기법이다.
이 기법이 사용된 대표적인 건물은 조성룡 도시건축사무소장이 92년초 강남 양재동에 지은 사무실용 건물 「양재 287.3」. 건물의 제목도 담백함을 추구하는 정신을 반영해 건물주소인 「양재동 287의 3」을 그대로 사용했다. 조소장은 『한창 양재동이 개발될 당시 무분별한 서구양식의 건물이 두서없이 들어서 도시의 진짜 표정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건물을 설계했다』고 말한다. 이런 건축동기 때문에 「양재동 287.3」은 건축사들 사이에서 양재동 건축을 지키는 「보안관」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소장 이외에도 승효상 이로재 건축대표가 이 기법을 사용해 동숭동 대학로에 지상 6층 규모의 「문화공간」이란 건물을 짓고 있고 건축사 이종호씨 등 많은 중견건축가들이 노출 콘크리트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서사봉 기자>서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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