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매복중에 잔당 발견 총격전/“살아야돼” 동료들 절규도 헛되이【강릉=특별취재반】 22일 새벽, 동이 트기에는 아직 먼 시간. 칠성산은 칠흑같은 어둠에 묻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수색작전은 벌써 5일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칠성산 동쪽에 온 몸을 위장하고 매복한 노도부대 31연대 7중대 송관종 일병(21)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고 K1소총을 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때 산 정상에서 『드르륵』하는 총성과 함께 수류탄 폭발음이 들렸다. 시계는 새벽1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상쪽에서 빠른 걸음 소리가 들렸다.
『대기』 짧고 굵은 지휘관의 한마디 명령에 온 몸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떨렸다. 수풀 속에서 무언가 어스름한 형체가 움직이는 듯 했다. 『사격개시』명령과 거의 동시에 송일병의 소총은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대편 숲속에서 섬광이 번쩍이는 순간, 송일병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동료들은 송일병의 머리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언제나 밝게 웃으며 내무반 분위기를 즐겁게 해줬던 송일병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송일병이 총격전을 벌이던 시각 화랑부대 13연대 9중대 3소대 강정영 상병(21)은 칠성산 서쪽에서 매복중 총격소리를 들었다. 『올것이 왔다』 강상병은 짧게 되뇌였다. 그러나 시야에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여명이 이제 막 산자락을 휘감아 돌기 시작한 상오 6시40분께 풀섶을 헤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무장공비임을 확인한 화기소대 분대장 조현덕 병장(23)이 일단 대기 지시를 수화로 내렸다. 무장공비가 사정권에 들어온 순간 일제 사격 명령이 떨어졌다. 강상병의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총격전은 15분 동안 계속됐다. 순간 강상병은 어딘가를 뜨거운 무엇인가가 관통하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방아쇠를 쥔 손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총격전은 끝난 듯 했다. 동료들은 뭐라 소리쳤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정영아, 정신차려. 살 수 있어. 살아야 돼』 교전이 끝나고 후송되는 강상병의 모습을 보며 동료 병사들은 외쳤다. 그러나 강상병은 병원에 도착하기 직전 21세 꽃다운 목숨을 조국에 바쳤다.
◎1군사령부장으로
육군은 22일 무장공비 수색작전 도중 총격을 받고 숨진 이병희 중사(25) 강정영 상병(21) 송관종 일병(21) 등 3명의 장례식을 서울 국군통합병원에서 1군사령부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장례일자 등은 유족들과 협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산화 2인의 병사
◎강정영 상병/디자이너 꿈키우던 외아들… 봉사정신 투철/“제대하는 날 기쁨 안겨드리겠습니다” 편지
무장공비 소탕작전중 전사한 화랑부대소속 강정영 상병(21·전남 여수시 신월동)의 아버지 강효남씨(51)는 22일 상오 한때 강상병이 중상으로 보도되자 소생의 희망을 가졌으나 군부대로부터 교전중 사망했다는 소식을 통보받자 시신이 안치된 홍천군 철정통합병원으로 향했다.
사촌형 강성권씨(26·전남 여천군 화양면)는 『외아들인데다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일이 없는 온순한 성격이라 부모님의 사랑이 지극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강상병은 지난 2월 『제대해 나가는 날 꼭 기쁨을 안겨드리겠습니다』는 편지를 보내 부모를 위로했다. 체격이 작아 걱정이 큰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강상병은 여천군교육청 관리계장 강씨와 어머니 추춘자씨(46)사이의 1남 2녀중 외아들. 여천 화양고를 졸업한 후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 한영공전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한 뒤 95년 9월 입대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봉사정신이 투철했던 강상병은 부하사병에게 자상하고 상관명령에 충실한 참군인이었으며 「혹한기 연대 전투단훈련」공로로 중대장표창을 받을 정도로 모범적인 군생활을 했다고 군관계자는 전했다.<여수=송두영 기자>여수=송두영>
◎송관종 일병/늠름했던 컴퓨터학도… 부대 궂은일 도맡아/병환중인 어머니 아들 전사 사실 모른채 밭일
『지난 여름 휴가가 마지막 상봉이 되다니…』
송기석씨(62·농사·전남 고흥군 점암면)는 한달전만 해도 늠름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던 아들 송관종 일병(21·노도부대)이 22일 공비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하자 『우리 막내가 정말 전사했단 말입니까』라는 말만을 되뇌며 오열했다.
송씨는 『6월 부대 면회때 관종이가 씩씩하게 군대생활을 마치고 제대하겠다는 약속을 했었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송일병은 전남 순천고를 졸업하고 숭실대 컴퓨터공학과 2학년에 재학중 1월 입대했다. 송일병은 노도부대 배치 후 유탄발사기 사수로 연대 사격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교육훈련과 내무생활에 충실한 모범사병이었다. 특히 부대에서 막내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항상 웃는 얼굴이어서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전우들은 전했다.
3남4녀중 막내인 송일병을 특별히 귀여워 했던 부모는 고향인 전남 고흥군 점암면 천학리 가학마을에서 마늘농사를 짓고있다.
가족들은 병을 앓고 있는 송일병의 어머니 김치심씨(59)에게는 충격을 우려해 부상당했다고만 알려 김씨는 아들이 전사한 후 한동안 밭일을 하고 있었다.<고흥=김종구 기자>고흥=김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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