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로프 낙하순간 “탕탕탕”/한밤 “괴물체” 보고 여명에 작전/긴급 후송 뇌수술 받던중 숨져【강릉=특별취재반】 20일 하오 11시 무장공비 잔당 추격작전이 숨가쁘게 진행중인 강원 강릉시 강동면 3공수여단 지휘본부에 급박한 상황보고가 전달됐다.
『칠성산 서쪽 기슭에 괴물체 발견, 명령 하달 바람』
19일 이후 전과가 없어 애를 태우던 3공수 지휘부는 칠성산에서 매복작전중이던 1대대로부터 날아온 소식에 일순간 흥분했다. 그러나 심야에 소총 등으로 무장한 공비들을 추격한다면 오히려 아군 피해만 커질 위험이 있었다.
『일단 대기, 날이 밝을 때까지 조심스럽게 관측하라』
드디어 새벽이 밝았다. 공수부대 요원들은 본격적인 소탕작전에 나섰다. 12대대 4지역대 통신팀장인 이병희 중사(25)도 총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동료 11명과 함께 UH-1H 헬기에 몸을 실었다.
작전지역은 칠성산 정상. 산아래쪽 병력들이 정상쪽으로 무장공비를 압박하는 동안 이중사와 동료들은 무장공비를 아래쪽으로 몰아가는 임무를 받았다.
헬기는 상오 9시30분께 칠성산 정상 6백m 고지에 다다랐다. 헬기조종사가 목표지점임을 알려주고 로프를 길게 내렸다. 대원들은 로프를 타고 신속하게 지상에 발을 내디뎠다.
순간 정상 부근 무성하게 우거진 풀섶 사이로 슬며시 총구가 나타났다.
『탕 탕 탕』
동료 대원 일부가 먼저 내리고 이중사가 5m 높이에서 막 땅에 발을 디디려는 순간이었다.
무장공비가 쏜 총알은 이중사 헬멧 아래 뒷머리에 맞았다. 순간 이중사는 땅에 그대로 쓰러졌다.
줄무늬 티셔츠 차림의 무장공비들은 총격세례를 받으며 칠성산 서쪽으로 달아났다. 대원들은 헬기를 불러 이중사를 급히 후송했다. 이중사는 국군강릉병원을 거쳐 아산재단 강릉병원에 도착, 뇌수술을 받던 중 후송 4시간만에 숨지고 말았다. 사나이중 사나이로 불리는 베레모 특전사요원을 동경해 입대한 이중사는 25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그는 무장공비에 의한 첫 아군 희생자가 됐다.
그가 숨지던 시간 동료 대원들은 이중사가 무사하기만을 기원하며 칠성산 일대에서 막바지 수색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숨진 이병희 중사/효자로 소문난 특전용사/사회진출 준비위해 복무기한 1년간 연장/가족들 “추석때 선물사 온다 했는데” 오열
『공비를 잡으러 간다더니 이게 웬 청천벽력입니까』
서울 도봉구 도봉1동 566의 35 두칸짜리 전세방에 살고 있는 아버지 이범식씨(59·노동)와 어머니 유화순씨(56)는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믿기지 않는 듯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21일 특전사 요원이 총상을 입었다는 뉴스에 종일 가슴 졸이다 부대로부터 전사소식을 통보받자 집안은 순간 통곡으로 가득찼다. 둘째형 병천씨(29)는 곧바로 시신이 안치된 강릉병원으로 떠났다.
전역을 불과 5개월 앞두고 무장공비와의 교전중 사망한 특전사 3공수여단 소속 이병희 중사(25). 그는 가정에서는 효자, 부대에서는 뛰어난 「검은 베레모」였다. 그는 서울경신고를 졸업한 뒤 91년 10월 군생활을 남자답게 하고 집안살림도 도울 겸 특전사 단기하사관에 자원입대했다. 지난 3월 4년5개월의 군생활을 마감하고 제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회에 진출할 충실한 준비를 위해 내년 3월까지 1년간 복무기한을 연장했다. 지난해 컴퓨터를 구입, 부대에서 열심히 배우며 전역 준비를 했다고 한다. 사격과 폭파에 특히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통신이 주특기였다.
84년 강원도 영월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온 이중사는 가난한 살림에 6형제중 다섯째였지만 효심이 깊은 특전용사였다. 아버지 이씨는 『병희는 부모 생일날 외출하지 못하면 꽃이라도 꼭 부치는 자식이었다』며 『추석날에 선물을 사갖고 온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 유씨는 『공비가 출현한 날 병희가 공비를 잡으러 간다고 집으로 전화했다는데 아무도 없는 바람에 병희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다』면서 『그 전화가 마지막이 될 줄이야…』라며 흐느꼈다.<윤순환 기자>윤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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