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이 밀회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된다. 마침 그를 빼닮은 데이브란 대역이 있었다. 간단한 의전행사를 맡기고 그 틈에 자신은 바람을 피우려고 물색해 둔 인물이었다. 대통령과 한통속으로 이를 훤히 알고 있던 백악관 비서실장이 대통령 유고 사실을 숨긴 채 이 대역을 이용해 대통령이 되려고 음모를 꾸미다 파국을 맞는다」물론 현실이 아니다. 얼마전 국내에서도 상영된 미 영화 「데이브」의 줄거리이다. 이 영화가 실재한 어떤 미 대통령을 모델로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다만 영화는 허구지만 「사실적」이지 않고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그럴듯해야 하고 나아가 현실을 꿰뚫어야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
미 역사상 위대한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4선에 도전하기 전 심장병이 위중한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2차대전 승리라는 「피할 수 없는 국가적 사명」이 있었다. 병세를 숨길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임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돼 사명 완수를 목전에 두고 그는 끝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그가 죽음에 앞서 치른 얄타회담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회담 당시 그의 병세가 얼마나 심각했는 지는 나중에야 밝혀졌다. 드골리즘을 계승한 프랑스의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도 지병으로 7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숨졌다. 그 역시 집권 직후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선고를 받았으나 이를 숨긴 채 내내 고독한 투병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위대한 정치가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 병을 숨기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 애쓴 것은 나라를 위해서였겠지만 과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그래도 남는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곧 심장병 수술을 받을 계획이어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이미 심장병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를 무릅쓰고 재집권에 도전, 성공했다. 크렘린궁은 19일 옐친이 수술을 받는 동안 핵통제권을 포함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에 이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마도 러시아 국민들은 지금 조마조마한 심정일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도 재임중 결장 종양제거수술을 받으면서 조지 부시 부통령에 대통령권한을 잠시 이양한 적이 있다. 당시 세계의 이목은 수술 결과에 모아졌다. 대통령의 건강은 이처럼 나라의 건강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든 지도자는 자신의 병력을 감추고 싶어 한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도 밥 돌 공화당 대통령후보의 공세에 못이겨 최근에야 병력카드를 공개했다. 이런 일들을 보고 들으며 내년 대선때면 우리나라에서도 후보의 건강문제가 이슈로 떠오를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를 헐뜯기 위한 것이거나 논쟁을 위한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국민이 대통령 후보의 「건강 진단」을 해보는 것은 당연하다.
나아가 후보의 정신적 건강을 알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는 과거 권위주의정권 시절 「육체적으로」더할 나위없이 건강했던 대통령이 알고 보니 정신적으로는 정반대였던 경험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육체적 건강보다 정신적 건강 여부를 알아내기가 더 힘들 것이므로 지금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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