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쟁점중 「정치활동」만 접점/전체회의 타결도 현재론 기대난/대통령 보고 단일·복수안 여부 관심노사합의에 의한 노동법 개정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19일 노동법개정 요강 소위가 전체회의에 상정한 노동법 개정 시안은 노, 사, 공익위원 9명이 지난달 14일부터 한달여간 작업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쟁점 대부분에서 노사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사가 합의한 부분도 있지만 복수노조, 교사·공무원의 단결권 등 핵심쟁점에선 전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3금 3제(복수노조금지, 노조의 정치활동금지, 제3자개입금지,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제)로 불리는 주요쟁점중 합의된 것은 노조의 정치활동금지규정 삭제 하나에 불과하다.
소위는 쟁점 대부분을 「미합의」로 전체회의에 보고, 대통령보고 때까지는 아직 협상의 여지가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노개위측에 따르면 현재 가장 큰 쟁점은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연계문제다. 배무기 상임위원은 『이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들은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측은 교사·공무원의 단결권 보장과 「근로기준 저하 반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총과 민노총은 전교조의 합법화등 교원의 단결권 확보를 노동법 개정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투쟁목표로 내세운 바 있다. 또 경영계가 주장하는 「고용의 유연성 확보」를 위한 변형근로제, 정리해고제 등 근로기준법의 개악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측은 공익위원이 마련한 토의원안과 수정안이 지나치게 경영계의 입장을 수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개위는 19일 전체회의에서 소위활동을 4일간 연장, 23일 다시 보고받기로 했지만 합의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전체회의에서 대통령 보고를 위해 주요 쟁점들을 표결에 의해 단일안으로 결정할지, 아니면 복수안으로 보고할지, 합의된 사항만 보고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전체회의는 「다수결 원칙」으로 운영되지만 노측은 「합의」가 안 될 경우 노개위에서 철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측의 노개위 철수는 「참여와 협력」을 모토로 청와대 개혁팀이 추진해온 노사관계 개혁을 파행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노개위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부가 공익위원을 중심으로 개정안을 마련, 법개정을 강행하더라도 야당의 반대로 국회 통과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막판 극적 타결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김영삼정부의 마지막 개혁」이라는 노사관계개혁의 성공여부는 조만간 판가름날 것같다.<남경욱 기자>남경욱>
◎노개위 주요쟁점 노사 입장/복수노조 단계 허용 접근/전임자 급여 문제로 진통/제3자 개입 허용 사 “불법단체엔 유보”/변형근로·정리해고 노 “조건부 인정”/공무원·교원 단결권 공익위원안 “관련법내 부여”
노사는 지금까지 노동법개정 요강 소위원회에서 여러 쟁점들중 ▲노조의 정치활동금지 조항삭제 ▲조정전치주의 도입 ▲4인이하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확대적용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노동조합법중 노조의 정치활동금지 규정이 삭제되더라도 노조의 정치활동이 완전히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통합선거법상의 제한규정이 여전히 남아 있고, 이를 개정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다.
노사가 합의하지 못한 주요 쟁점중 복수노조허용문제는 단계별로 단위사업장까지 전면허용하는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이 복수노조 난립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거부를 조건으로 내걸어 난항이다. 사측은 전임자 문제를 관철하기 위해 현재 임금의 2%인 조합비 상한선 폐지에 동의해주었지만 노측은 전임자 급여가 없으면 노조 활동이 어렵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노사의 의견차는 좀처럼 좁혀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제3자 개입금지에 대해 노측은 이 규정이 5공시절 노동운동을 탄압하기위해 도입된 것인 만큼 완전삭제를, 사측은 아직까지는 한총련이나 이념상담소 등의 개입은 막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교조의 합법화 문제와 연결돼 있는 공무원·교사의 단결권문제는 노측이 가장 중요시하는 문제다. 공익위원이 내놓은 안은 노동조합법이 아니라 공무원·교원 관련법에서 단결권을 부여하자는 것인데 노측은 노동조합법상의 노조를 주장하고 있다.
경영계는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어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은 입장이며 공무원의 사용자인 정부의 견해는 공익위원 안에 대체로 녹여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변형근로시간제에 대해서는 노측은 도입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되 법정기준근로시간(현행 주 44시간)을 42시간, 더 나아가 40시간으로 단축하자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근로시간의 단축은 실질적으로 임금인상 효과를 갖고 있어 경영계가 반대하고 있다.
정리해고에 대해 노측은 중대한 경영상의 이유등 해고요건을 근로기준법에 명문화하자는 소위의 안에 대체로 공감하나 노조와의 합의를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절충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근로자 파견제는 노측의 거부감에다 사측도 소위안이 현실보다 큰 실익이 없어 머뭇거리는 상황이어서 실태연구를 한 뒤 추후 입법화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생리휴가는 청구시 무급으로 하자는데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으며, 퇴직금 중간청구제 등에도 노사의 입장이 다르다.<남경욱 기자>남경욱>
◎특별기고/장명국 석탑노동연구원장/노동법 개정/다시 정약용을 생각하며
4개월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경제의 장밋빛 청사진을 발표했다.
2020년에는 1인당 실질GNP가 3만달러를 넘어서 경제규모가 영국을 제쳐 세계7위가 되고, 주택보급률 100%, 대기오염도는 절반으로, 교사 1인당 학생수는 14명…. 그러나 OECD 가입을 눈앞에 둔 지금의 한국경제는 경기연착륙은 커녕 위기가 왔다고 난리다. 재정경제원은 경제 어려움의 원인을 고비용·저효율로 진단했다.
지금은 WTO 체제하에서 21세기를 준비하는 시기다. 현실적 안정보다 내일을 향해 개혁을 실천해야 하는 시기다. 노사개혁까지 실망을 안겨준다면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된 이 시점에서 우리 국민들은 더없이 허망할 것이다.
노사개혁은 노·사·정 모두가 지혜를 모을 때 가능하다. 그것은 기준과 원칙을 명확히 하는 가운데 현실을 인정하면서 서로 동의하는데서부터 실현된다.
실학의 거봉 정약용은 「경세유표」 「목민심서」 등의 책에서 요즘 말로 이자나 땅값 등 자산소득을 줄이고 근로소득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도나 정책은 이같은 기준과 원칙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자율과 땅값을 낮추어야 한다. 무작정 실질임금을 낮추자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조를 개혁하려는 마음과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노사개혁 등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된다. 소 잃고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일하는 사람들 자신이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나 장(Field)을 만들지 않고 경쟁력을 제고시키려는 것은 사상루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지난날의 방식으로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은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되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가 아니다. 생산만을 중요시하는 시대가 아니라 소비자 주권이 더 한층 강조되는 시대다.
혁신이 강조되고 있다. 혁신은 슘페터(J. Schumpeter)가 말한 것처럼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다. 「민주화와 일하는 사람들」 ―이것이야말로 혁신의 기준과 원칙이 되어야 한다.
노동법을 전향적으로 개정해야 한다. 경영공개를 제도화시키며 전문경영인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소유분산을 기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정착시켜 노·사·정 모두가 변화와 개혁의 주체세력임을 확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루스벨트가 근로자들을 주체로 한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한 것처럼 한국경제의 도약 역시 일하는 사람들을 주체로 세웠을 때 가능하다.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국가들도 노조나 일하는 사람들을 정치·사회의 주체로 세워 복지국가를 이뤘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작은 이익에만 연연해 집단이기주의로 비난받는다면 변화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노조가 개혁의 진정한 주체가 돼야 한다. 사용자들도 소유욕을 넘어서서 경제민주화에 발맞추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부가 가장 크게 가장 빨리 변해야 한다. 노동법 개정이나 경제민주화를 제도화하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결단의 시기가 다가왔다. 안이하게 대처하다간 로마처럼 망하거나 브라질이나 멕시코처럼 될지도 모른다. 중소기업이 튼튼히 뿌리내린 대만과 거품을 걷어내고 있는 일본을 면밀히 살피고 어려움속에서 현장 생산성을 높여간 최근의 미국경제를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노·사·정 모두 일하는 사람들로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 뿐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의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 이 모든 변화와 개혁은 일하는 사람들의 참여와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R&D투자도 중요하고 산업구조 고도화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들이 일터에서 신명나게 일하고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분위기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현실을 인정하면서 한발 한발 국민 대다수의 힘과 지혜를 모을 때 가능하게 된다. 오늘 우리 경제를 보면서 정약용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