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원초적 제의의 흔적들「96 창무국제예술제」(9월12∼22일)는 아프리카 공연예술이 주축을 이룬다. 국제 유수의 무용단들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낯선 아프리카지역의 춤과 가락이 판을 휩쓸어 우리 세계화의 일면이 무용세계에서 앞서 나가는 인상이다.
세계화는 반드시 선진제국만을 모델로 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낯선 개발도상국가들의 문화예술과 친근해지는 것도 세계화의 한 방향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나 이집트 자이르 미국의 필라델피아 흑인무용단 등 우리에게는 아직도 먼 이역으로 느껴지는 나라의 무용과 음악이 호암아트홀, 마로니에 야외공연장, 창무예술원의 포스트극장에서 입체적으로 벌어지는 아프리카 예술축제는 글자 그대로 낯선 풍물의 예능시장처럼 보고 즐기는 축제의 광장이다.
이 아프리카의 예술축제에는 점잖은 예술적 세련미보다 아직 원시의 리듬과 손짓 발짓이 살아 있는 기호로 작용하는 아련한 제의의 흔적이 짙다. 서울현대무용단, 가림다무용단, 국수호 디딤무용단, 창무회 등 한국의 팀들이 제의를 떠나서 예술적 형상화를 도모하는 가운데 아프리카 팀들은 아직 그들이 버리지 못한 제의의 유산 속에서 현대화의 겉옷(의상)만 걸친 채 그들의 음악에 몸을 내맡기고 춤사위의 움직임을 천성으로 밟아 나간다.
14일 호암아트홀의 미국 필라델피아 흑인무용단은 아프리카의 춤과 가락을 근원에서 피드백시켜 재즈화한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아프리카의 후손들이 미국이라는 문명사회에서 고유의 문화유산을 어떻게 개발해내면서 현대무용의 기량과 접목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충돌의 소리 「뱅」은 남녀간의 갈등, 현대사회의 부조리와 무관심 폭력 등을 형상화했으며 특히 「오티스 조곡」 같은 재즈발레 작품은 남녀라는 유기적 관계, 그리고 그것이 발전한 그룹간의 관계를 묘사한다. 「미추」라는 작품은 무용수들의 신체적인 특징을 잘 드러내면서 흑인의 몸매에 다채로운 색상의 의상이 어떻게 어울리는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현대적인 의상에 가려지는 아프리카 원시의 활력과 제의성은 12일 개막식공연의 갈라무용축전에서 우리의 낯선 관심을 끄는 아프리카 토속춤의 맛뵈기로 선보여졌고 마로니에광장(13∼15일)의 야외공연 또한 활력과 공감의 축제분위기였다. 그런 반면 16일 포스트극장의 가나무용공연은 잃어버린 제의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담긴 원초적 리듬과 춤으로 전통의상의 껍질 속에 알몸을 숨기고 이제는 서커스가 되어가는 전통예능의 비애마저 느끼게 한 공연이었다.<이상일 성균관대 교수·무용평론가>이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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