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조성 잠정협정 등 끌어내기용/강경파 주도 체제 불안 외부전가도북한이 무장간첩 남파라는 무리수를 택한 배경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북한 잠수함과 무장간첩의 동해안 침투는 북한이 여전히 대남적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주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에도 서부전선 임진강에서 무장간첩을 남파하는 등 70년대이후 3백여차례에 걸쳐 간첩침투를 시도했다. 이번 간첩 침투 역시 북한의 「일상적」대남 전략의 하나로 수행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북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다.
그렇지만 북한이 전면전 수행능력에 의심을 받고 있고, 또 나진·선봉국제투자포럼 등 대외 개방정책을 추진중인 상황에서 이처럼 무모하고 대담한 적대행위를 감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몇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북한이 고전적인 강온 양면전략에 기초한 「우리 정부 흔들기」작전을 시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즉 정부의 대북 정책을 시험하는 한편, 강경대응이 나오더라도 유화론쪽으로 기울어 있는 학생·재야단체의 반발심을 심화시켜 혼란을 끌어낼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나진·선봉국제투자포럼에서 우리 참가단에 대해 일관되지 못한 태도를 보인 것도 이같은 측면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번 간첩침투가 한반도의 긴장분위기를 고조시켜 이를 통해 대미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강하다. 북한의 대미, 대일관계가 지난 4월 한·미 양국정상이 제안한 4자회담과 연계돼 급속한 진전이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교착상태에 빠진 이들 국가와의 관계를 타파하기 위한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17일 한반도에 「폭발 직전의 초긴장 상태」가 조성되고 있다며 북·미잠정협정 체결을 촉구한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북 정세인식 차이가 크고 북·미간 유해송환, 미사일협상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는 시각이다. 4자회담 제의 이후 북한이 판문점과 서해상에서 벌인 연속 무력시위도, 당시 우리보다는 미국에 대한 제스처였으며 비슷한 유형의 도발이 간헐적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보면 무장간첩침투 역시 체제 불안 위기를 외부로 돌리기 위한 목적을 포함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북한의 다목적 대남·대외 카드일 공산이 크다.
이번 사건이 대외경제개방을 주도하고 있는 정무원 중심의 온건파에 대해 군부 중심의 강경파가 제동을 건 것이라는 분석도 상당부분 공감대를 얻고 있다. 군부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강경파가 개방정책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강경파는 항상 남북문제가 미묘한 상황에 처해 있을때 북한내부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일을 저질러 왔다는 것이 우리측의 분석이다.
한편 정부는 북한의 도발행위에는 단호히 대응한다는 원칙이지만, 우리 기업인들의 나진·선봉국제투자포럼 참가 무산과 이번 사건이 그동안 지속돼온 남북 교류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청와대 움직임/새벽 보고받고 만반대처 지시/비서실 중심 상황점검·대응책 강구/시민신고로 초기 사태장악엔 안도
청와대는 18일 북한의 무장간첩이 잠수함을 이용해 침투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수시로 각급 채널을 통해 군의 대간첩작전 상황 등을 보고받고 군경의 방위태세를 점검하면서 향후 대비책을 숙의했다.
김영삼 대통령도 이날 새벽 무장간첩이 침투한 사실을 외교안보수석실에 설치된 안보상황실을 통해 즉각적으로 보고받고 유종하 외교안보수석에게 『철저한 수색을 펼쳐 만의 하나라도 선량한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은 또 『수석비서관들이 수시로 상황을 점검해 빈틈없는 대책을 마련하라』며 『이번 일을 일으킨 북한의 의도를 분석, 향후 대응책을 강구하라』고 김광일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이날 상오 김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고 유종하 외교안보 심우영 행정수석 등 관계수석들로부터 무장간첩의 침투경위와 군경의 수색 및 대간첩작전 전개상황을 보고받고 이번 사태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특히 무장간첩 침투사건과 관련된 북한내부 동향과 북한의 정전협정파기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대응책 등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북한이 잠수함을 이용해 우리 해안에 버젓이 무장간첩을 침투시키는 행위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며 『군경의 철저한 대비태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일반국민의 대공 경각심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이번 무장간첩 침투사건이 시민의 신고에 따라 군경이 즉각적으로 대간첩작전에 돌입함으로써 초기에 사태를 장악하게 된데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한 안보관계자는 『북한이 그동안 우리 국민을 자극하는 것이 그들의 대남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아래 무장간첩을 보내는 등 극한적인 도발행위는 벌이지 않아왔다』며 『이번에 무장간첩을 남파한 것에 대해 북한의 의도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우리 군경이 침투예상지역을 철저히 봉쇄하고 있기 때문에 쓸데없는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며 『군경과 무장간첩간에 교전이 있었다는 잘못된 보도는 자칫 국민에게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다』며 언론의 신중한 자세를 주문했다.<신재민 기자>신재민>
◎나머지 무장간첩들 어디에/수개조 분산 산악 도주 추정/민가 출몰때 “태백산 준령이 어디냐” 질문/「비트」 등에 은신,어둠속 신속이동 가능성
도주한 무장간첩들은 어디에 숨어 있으며 군의 포위망속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임무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어떤 경로를 통해 월북을 기도할 것인가.
이들은 18일 어둠이 짙어진 하오 9시를 전후해 강릉시 강동면 곳곳에서 출몰, 일단 이 일대 산악지역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우리 군과 교전을 하거나 민가에서 음식물을 빼앗아가기도 했다.
이에따라 군은 일단 이들이 잠수함 좌초 지점에서 최대 반경 50㎞이내에 숨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군은 또 도주간첩들이 2∼3명씩 조를 짜 분산해 움직이고 있으며 일단 북쪽의 강릉시를 피해 인적이 드문 산악지대를 거쳐 태백산맥쪽으로 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8일 밤 민가에서 음식물을 빼앗은 무장간첩은 『태백산 준령이 어디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침투조로 특수훈련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도주간첩들중 일부는 예상보다 멀리 달아났을 가능성도 없지않다. 특수훈련을 받았을 경우 야간에도 50㎞정도의 산길을 5시간에 주파할 수 있고 안내원을 대동하고 있다면 이동속도가 훨씬 빠를 것이라는게 대공관계자들의 얘기다. 18일 밤 북한 말씨를 쓰는 2명이 승용차로 대관령쪽으로 향했다는 신고도 있었다.
대공관계자들은 무장간첩들이 군경의 포위망이 압축되면 일단 낮에는 「비트」(비밀아지트)로 불리는 은신처에 몸을 감추었다가 밤이 되면 어둠을 틈 타 움직이는 행동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트는 자연지형을 이용해 땅을 파고 나뭇가지나 풀로 덮은 소형 은신처다. 낙엽이 많은 가을철에는 이들이 일단 비트에 은신할 경우 1m앞에서도 확인하기 힘들다고 한다.
대공관계자들에 따르면 남파간첩들은 한 톨의 식량이 없어도 1주일에서 열흘까지 버틸 수 있도록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더구나 이번 무장간첩의 경우 남한에서 모종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비상식량까지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승무원 식량도 있을 것으로 보여 과거의 무장간첩들보다는 훨씬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으로 군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현재 군은 간첩들이 북으로의 복귀를 위해 인근 황병산, 대관령등 태백산맥 줄기로 숨어드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과거 고정간첩과 남파간첩들이 월북을 위해 단골루트로 사용했던 태백산맥은 험준한 산세로 인해 수색작전이 용이하지 않다. 남파간첩이 이 루트를 이용해 재월북했던 선례도 있었다.
그러나 간첩들이 장기간 은신처에 잠복해 있다 경계가 느슨해지길 기다려 야간에 해상으로 탈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이 무전기로 서로 교신할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연락도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제2의 장소를 탈출지점으로 정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남경욱 기자>남경욱>
◎전문가 긴급진단/지만원 군사평론가/해안감시체계 강화 급하다/백% 탐지해내야 북 남파시도 저지/스커드 등 탄착지점 관측목적 추정
동해안의 허리인 강릉에까지 잠수함이 내려와 무장간첩을 침투시켰다.
지난 여름 휴전선과 부여에 침투한 무장간첩에 이어 최근들어 세번째 침투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가지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남파되는 무장간첩은 1백% 우리국군에 의해 포착되고 있는 걸까. 북한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북한은 지금 미국과 관계개선을 갈망하고 있다. 많은 나라로부터 동정심을 유발해 식량원조를 받아내야 한다. 이러한 북한에 무장간첩 남파 적발은 독약이나 다름 없다.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은 무슨 이유로 무장간첩을 계속 내려 보내는 것일까. 첫째는 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남파임무가 위험을 무릅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무장간첩이 국군에 의해 1백% 탐지됐다면 북한은 무장간첩을 남파하지 않았을 것이다. 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다. 이는 성공한 케이스가 많다는 사실을 암시해주고 있다.
사실상 지금 우리 군의 해안감시체계는 어수룩하다고 할만큼 문제가 많다. 현 해안감시시스템을 가지고 반잠수함이나 소규모 함정의 침투를 50%이상 발견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우선은 기껏 몇년전에 구입한 레이더 장비가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이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감시행위를 소홀히 한 군인을 색출하여 책임을 규명할 수 있는 녹화시스템이 없다.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수단이 없으면 해안감시 태세가 완벽할 수 없다. 선진국 해안에는 감시병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침투정이나, 심지어 헤엄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해서까지 마치 은행의 폐쇄회로 TV처럼 상황을 녹화해두었다가 책임을 규명하는 정밀 레이더와 녹화기가 설치돼 있다.
과거 무장간첩의 임무는 양민학살이었다. 사회를 교란하고 정부의 무능을 남한주민에게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근의 무장간첩은 조용히 침투했다. 무장도 매우 빈약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남파됐을까. 남한내에는 간첩이 숨겨둔 무전통신장비가 매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왜 이렇게 많은 무전기를 남한에 묻어 두어야 했을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화력관측용이다. 대구경 장거리포와 스커드미사일을 남한의 전략목표로 유도하려면 누군가가 포탄의 탄착지점을 관찰해서 알려줘야만 한다.
방금 발사한 스커드미사일이 원자력 발전소를 얼마나 비켜서 떨어졌는지, 불발탄은 아닌지를 알려주어야 그 다음의 포탄을 목표지점으로 날릴 수 있다. 이렇게 무더기로 묻어둔 무전기는 또 누군가에 의해 각 전략목표 근처로 정확하게 분산시켜 둬야 한다. 이는 남한내에 있는 고정간첩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바로 북한에서 넘어오는 군사 프로만이 할 수 있다. 아무리 위력있는 스커드미사일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남한내에 무전기를 가진 관측병이 없으면 그 효과는 수십분의 1로 감소되고 만다. 무장간첩은 바로 스커드미사일의 부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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