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신화」 창조 건설업계 “거목”/“남의 것 맡았기에 더욱 완벽하게” 부조리없는 외길/워커힐3·1빌딩 등 화제 남기고 반세기만에 은퇴『경영실무를 놓기는 했지만 몸과 마음마저 삼환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건강과 머리가 살아있는한 영원히 삼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국내 건설업계 거목이자 중동건설신화 창조의 주역인 삼환기업 최종환 명예회장(73)이 창업 50주년을 맞아 이달초 그룹경영의 대권을 장남인 최용권 부회장에게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해방직후 혼란기에 미군 군납공사로 사업을 일으킨지 꼭 반세기만이다.
말그대로 강산이 여러차례 바뀌는 동안 최명예회장은 황소걸음으로 건설외길을 걸으며 삼환을 한국의 대표적 건설업체로 키워왔다. 62년 지은 워커힐을 비롯, 한국 최초의 철골고층빌딩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31빌딩, 자유센터 국립극장 조선호텔 등 80년대이전의 국내 내로라 하는 건물들은 모두 삼환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삼환은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진가를 발휘했다. 최명예회장은 66년 월남에 진출, 한국건설업에 해외건설 시대를 열었고 7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장 먼저 나가 중동건설붐에 불을 당겼다. 사우디에서 공기를 앞당기기 위해 1일3교대로 야간 횃불작업을 하던중 근처를 지나던 할리드국왕이 이를 보고 감격해 새로운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삼환에 준 일화는 지금도 건설업계에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합니다. 건설은 매우 특수하면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남의 것을 맡았기 때문에 더욱 완벽하게 일을 해야한다고 평소 직원들에게 말해왔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삼환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명예회장은 그 어느 분야보다 부조리가 관행화하다시피 한 건설업을 해오면서도 로비 및 정경유착과는 담을 쌓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5·6공 비자금파문으로 거의 대부분의 재벌기업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을때도 삼환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최명예회장이 해외건설에 눈을 돌린 진짜 이유도 로비와 교제보다는 실력으로 당당히 승부를 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최회장의 외골수적인 성격은 삼환이 보수적이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기업성장이 정체됐다는 평가를 받게 된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
『건설업에만 종사했기 때문에 다른 어느기업보다 (로비나 정경유착의) 기회가 많았던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사람을 사는 것같아 싫었고 인연도 없었습니다』
최명예회장의 일선은퇴는 한국 경제성장사를 주도해온 창업 1세대가 사실상 모두 경영현장에서 물러났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최명예회장은 앞으로 신임회장의 경영자문에 응하면서 전경련고문과 세계건설협회 총연합회 종신회원등으로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회장은 75년부터 회사경영에 참여해 왔고 5년전부터 사실상 모든 경영을 맡아해왔습니다. 앞으로 삼환을 더 건전하고 수익성 높은 기업으로 이끌어 갈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경영을 넘겼습니다』
고희가 지난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최명예회장은 『욕심안내고 자기가 가진 능력을 100% 발휘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했다.<배정근 기자>배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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