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인 레드」는 90년의 데뷔작인 「택시 블루스」로 칸영화제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던 파벨 룽겐 감독의 신작이다. 사회학도 출신 감독답게 그는 영화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후 러시아 현실을 담아내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택시 블루스」는 택시 운전사의 삶을 통해 오늘날 러시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삶의 기준과 방향을 잃어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과 풍부한 감성을 바탕으로 급변하는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가치상실을 경직되지 않은 시선과 상징적 표현으로 그린다.
「라이프…」에서는 복잡하고 혼란스런 러시아의 현실이 범죄집단인 마피아의 거친 폭력장면으로 비유되지만, 동시에 낭만적인 남녀의 사랑이야기도 진행된다. 프랑스인 작곡가 청년 필립 로빙(뱅상 페레 분)은 러시아 여행중 마피아 단원인 옥산나(타냐 메체르키나 분)의 유혹에 빠져 납치된다. 마피아 집단의 사기극에 이용된 뒤 그는 처형될 위기의 상황에 놓이게 되나, 그와 사랑에 빠진 옥산나와 함께 프랑스로 탈출한다.
마피아의 두목인 파파(아르만 지가르 카니안 분)는 자신이 친딸처럼 생각하는 옥산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한다. 영화 전반에 걸쳐 절망과 희망, 공포와 유머의 분위기가 교차하고 있다. 영화의 초현실주의적 표현과 해석은 사실성을 획득하는 객관적 카메라 관점과 조화를 이루어 사실과 신비함이 혼재된 독특한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영화 전개도 다양한 영화 장르 특성들의 솜씨있는 뒤섞음을 통해 고착되지 않은 신선한 느낌으로 전달된다. 즉 필름누아르적인 암울함과 블랙코미디의 파격성이 어우러져 문명과 미개, 구소련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대립과 혼재를 유머러스한 동화적 세계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가 현실과는 다소 거리감있게 그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공감과 연민의 여운을 갖게된다.
영화의 또다른 매력은 성격 묘사에서 전형화한 이분법적 해석을 극복하는데 있다. 장르의 복합혼용과 풍자적 분위기에 적합하게 캐릭터의 유형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독특한 해석의 영화형식을 부여한 세련된 연출력이 인상 깊다.<편장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편장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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