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신문에 난 1단짜리 해외토픽 기사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인 통가왕국의 국왕이 『선거로는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찾을 수 없다』면서 국회의원 중에서는 장관을 임명하지 않겠다고 어느 잡지와의 회견에서 말했다.인구 10만의 소국인 통가는 28명의 국회의원 중 9명이 일반투표로 선출된 사람들이다. 국왕 투포우 4세의 말은 그의 30년 통치에 반기를 들고 민주화를 외치는 일부 선출직 국회의원들에 불만을 토로한 것이겠지만 그냥 공허하게만은 들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는 한 국회의원의 선거비용 과다사용 여부로 떠들썩하다. 이것을 보고 있노라니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만이 국회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고개를 쳐든다.
제15대 국회의원의 대부분은 법정 선거비용을 초과사용해 당선되었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그중 한사람에 대한 증거의 꼬리가 보인다고 해서 거기에만 이목이 매달려 있다. 그것은 증거만 노출 안되면 딴 초과사용 의원들은 상관없다는 말로도 들린다. 사람들은 그 증거의 한 토막이 무슨 왕릉의 부장품에서 출토된 것이기나 한 것처럼 놀라워 한다. 그러나 그런 증거물은 희귀품이 아니다. 그동안 다른 의원들도 증거가 없어서 못 찾아낸 것은 아닐 것이다. 애써 찾아낼 생각이 없었을 뿐이다. 국회의원들은 증거가 있어도 없는 얼굴을 하고 있고 정부는 찾아도 못 찾아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가면극의 극장안에 있다. 국회의원들도 가면을 쓰고 있고 정부측도 가면을 쓰고 있다.
국회의 본회의장에 가득 찬 면면들은 선거때 법을 법대로 지켰으면 저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얼굴이 몇몇인가. 그런 당선이 200만원짜리 양주의 외유쇼핑보다 덜 부도덕해 저렇게 태연한가. 시치미의 국회요 위장의 국회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려봤자 얼굴 자체가 가면이다.
새 통합선거법은 「지킬 수 없는 법」이라고 강변할 것이다. 지킬 수 없는 법이라지만 비양심과 비양심끼리는 지켜봤자 소용없는 법이란 말이지 양심끼리는 얼마든지 지킬수 있는 법이다. 이런 법을 준수할 수 있는 양심가진 사람만이 국회의원이 되라고 만든 법이다.
국회의원들은 가면을 쓴 얼굴로 거울앞에 서자. 그래서 법을 어기면서까지 꼭 국회의원이 되어야 할 까닭을 지금이라도 자문해야 한다. 국회의원에 대한 재래식 환상은 버려야 한다고 가면은 가르쳐 줄 것이다. 법을 지킬 힘이 없는 사람은 도덕성을 지탱할 힘이 없는 사람이다. 새로운 시대는 준법뿐 아니라 도덕심으로 갑옷처럼 무장한 국회의원상을 요구한다. 국회의원은 양심의 본보기여야 하고 국민적 양심의 대표여야 한다. 이제 모든 허위의 너울을 벗고 국회의원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줄 차례다.
정부도 본연의 얼굴을 가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선거혁명을 꼭 이루어 내고야 말겠다고 장담했고 몇사람이든 당선무효시키겠다는 엄포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법을 어기고라도 당선된 사람이 옳았다. 선거 뒤에 바람잡는 소리만 해대더니 잠잠해졌다. 선관위가 선거비용 실사결과라고 해서 그나마도 극히 일부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김빼는 소리만 하고 있다. 가면의 목소리다. 그렇다면 선거혁명은 벌써 다 끝났다는 말인가. 이러구러 세월은 가는 것이고 이러구러 선거는 또 다가오는 것이라는 말인가.
선거사범이 하도 많아 역부족이라고 할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더욱 큰일이다. 법이 힘이 있는 곳에 국민도 힘이 있다. 나라의 법 집행력이 이렇게 무력하다면 국민들은 맥이 빠진다. 영이 서지 않는 나라, 법을 수호할 힘을 잃은 나라의 국민이라니 말이나 되는가. 호법의 힘이 없는 것은 호국의 힘이 없는 것이다. 국토방위의 힘만 국력이 아니라 국가 보지의 힘도 국력이다.
「법을 마련하여 엄하게 다루려거든 우뢰처럼 두렵고 서리처럼 차갑게 하라」고 「목민심서」는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뢰여상의 국권이 없다. 그래서 법을 만든다는 사람들이 법과 국권을 조롱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가면극의 스토리다.<본사 논설고문>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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