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면 평생 먹을 돈” 이상열기 들떠/빚몰려 자살·청소년범죄 부쩍 늘어나최근 페스카마호 선상살인사건을 계기로 중국 연변(옌볜) 조선족 동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고 연변쪽의 한국관도 심상찮은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이 이런 갈등을 낳았고 그 해결방법은 어떤 것인지 전문가의 눈을 통해 살펴 본다.<편집자 주>편집자>
92년 첫 방문이래 몇차례 중국 동북지방에 들렀지만 이번 여름에는 특별히 심각한 인상을 받았다. 연변(옌볜)의 조선족 동포사회가 너도나도 한국에 가서 한번 고생해 일생동안 먹고 살 돈을 벌려는 열기에 들떠 있는 것이다.
그들은 4∼5년 소득에 해당하는 돈을 5부 이자로 구해 알선업자에게 낸다. 한국에서 1년동안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고 2∼3년 불법체류해 고생하면 수십년치 수입을 거머쥐고 돌아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일이 수포로 돌아가면 빚 때문에 자살하거나 가족이 풍비박산한다. 한마디로 전가족의 운명을 건 도박을 하는 것이다.
한때 높은 수준의 교육을 자랑했던 조선족 학교들이 최근들어 저조한 대학입학률을 보이거나 아예 폐교까지 한다. 경험많은 교사들이 모두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또는 한국기업체가 있는 곳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페스카마호 선상살인극의 주범 전재천도 그런 사람의 하나다.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은 한국기업체의 현지고용원이 되려고 중국 곳곳으로 흩어져 나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일이나 가리지 않고 한국의 노동판에 뛰어든다.
부모들이 뿔뿔이 흩어져 돈벌이나가 있는 동안 홀로 자란 아이들은 뒤틀린 생활방식과 불안한 정서를 갖게 돼 청소년 범죄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농촌에서는 노동능력이 있는 청장년 남녀가 농사를 팽개치고 떠나가고 농토를 한족들에게 빌려준다. 머지않아 조선족은 토지를 비롯, 경제생활의 바탕을 이런 식으로 모두 한족에게 넘겨주고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주변적인 존재가 되어 뜬구름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그들의 사회와 문화가 한국열기로 인해 오히려 해체되고 있는 모순적인 현실앞에서 우리와 조선족의 관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심각히 재고해야 함을 느낀다.
조선족 동포는 그동안 사회주의적 집체생활과 평등주의에 젖어왔기에 한국사회의 격심한 경쟁원리와 개인주의 생활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또한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위계에 따른 명령체계와 작업장의 험하고 거친 노동문화에 사상·정서적으로 혼란을 겪으며 자신이 특별히 의도적인 모욕과 냉대·차별을 겪는 것으로 오해한다.
최근의 선상 살인극도 그런 오해와 반감이 가져오는 극단적인 행동의 예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천인공노할 범죄는 그들이 「조선족」이라는 사실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돈이라는 괴물에 홀린 문화적응 실패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조선족 동포들은 고생을 견디며 열심히 일하고 있지 않은가.
서로 오해를 씻고 조선족 동포의 노동력을 상호 유익하게 활용하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나는 먼저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버리고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견딜 각오를 가지기를 기대한다. 물론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그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한국 기업주의 자세나 인격모독을 일삼는 작업장 문화는 고쳐야 한다.
또한 제도적인 장치도 강구돼야 한다. 우선 인력수급 양성화와 취업자 개인의 기술연관 분야 배치가 가능하도록 체류와 취업에 관한 법규를 개선해야 한다. 보다 젊은 나이에 몇년 일을 하면 한국기업주도 질적으로 나은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고 그들이 귀국해서도 계속 활용할 수 있는 생산적인 경험과 기술 축적이 가능하다. 실제로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조선족 동포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도와주는 것이다.
또한 인력 송출업체는 충실한 교육과정을 통해 필요한 자질을 배양하고 한국의 실정, 노동현장의 조건과 문화 등을 제대로 이해시켜 적응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력모집 체계를 확립, 턱없이 많은 돈을 뜯기고 그 모든 것을 한국에서 메워야만 하는 부조리의 척결 방안을 중국당국과 공동으로 모색해야 한다.
조선족 동포 주변의 밀입국, 위장결혼, 가짜친척, 위조여권, 불법체류, 행방불명, 충격적 범죄 등은 미국이나 일본에 가려고 결사적으로 매달리던 우리의 어둡고 가난했던 지난날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울러 그것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녘의 우리 동포에 머지않아 닥칠 상황인지도 모른다.
북한동포가 전혀 다른 생활양식과 상상을 초월한 경제적 격차에 부닥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돈에만 눈이 어두워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므로 조선족 동포 문제는 우리가 통일을 준비하는데 있어 심각히 생각해야 할 바를 일깨우는 귀중한 경험이다. 우리가 조선족 동포와 함께 살아가는 자세를 가다듬고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곧 북한 동포와 하나가 돼 살아갈 방법을 터득하고 준비하는 일과 직결된다.<김광억 서울대 교수·인류학>김광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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