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심금 울린 걸쭉한 목소리/예술경지 재즈 국내 첫 소개/장안의 멋쟁이들 사로잡아/내한 공연땐 2주간 북새통흰자위가 튀어나올 듯 눈을 부릅뜨며, 양볼이 터져라 입술에 기를 모아 트럼펫의 피스를 애무했던 흑인 재즈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1900∼71년). 예술적 경지의 재즈를 한국에 전한 주인공이다.
그를 대중음악의 안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그를 폄하하는 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중과 함께하는 음악」을 표방했던 그가 50년대에 이땅에 뿌려 놓은 재즈의 씨앗이 지금 커다란 대중화의 열매를 맺고 있다. 즉흥연주의 대가인 그는 힘과 감성이 넘치는 연주로 주목을 받았다. 걸쭉한 목소리에 실린 그의 노래는 인종과 국가를 떠나 모든 음악팬에게 친숙한 공감을 주었다.
암스트롱이 죽었을 때 미국 매스컴은 『문화의 한 시대가 끝났다』고 추도했다. 재즈의 역사이기도 한 그는 국내에서도 재즈마니아들로부터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다. 처음 미군부대 주변에서 위력을 떨쳤던 그의 매력은 곧 젊은 문화로 파고 들었다. 재즈뮤지컬 「서푼짜리 오페라」의 주제음악이었던 「Mack The Knife」「Blueberry Hill」 등은 50년대 장안의 멋쟁이들이 흥얼거렸던 그의 걸작들이다.
그의 인기는 62년 내한공연으로 증명됐다. 당시 동양에서 가장 크고 호화롭다는 워커힐호텔의 개관기념공연에 환갑이 넘은 암스트롱이 초대된 것이다. 2주간 진행된 그의 공연은 매일 북새통을 이뤘다. 이 무대에서는 한국 소녀 하나가 그와 공연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16세이던 가수 윤복희는 미8군무대에서 암스트롱의 흉내로 사랑을 받고 있었다. 내한한 암스트롱이 그 소문을 들었고 즉석 오디션을 거쳐 함께 무대를 꾸민 것.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듬해 윤복희는 미국에 갔고 한동안 암스트롱과 함께 음악을 했다.
『그분은 체구가 작은 나를 「다람쥐」라고 불렀어요. 주위 사람들은 그를 「아버지」라는 의미의 「팝」이라고 불렀죠. 나에게 「아름다운 것」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 분입니다』 윤복희의 회고다.
암스트롱은 64년 불멸의 히트곡 「Hello, Dolly」를 발표하면서 미국과 한국에서 절정의 인기를 얻었다. 그가 68년에 부른 감미로운 노래 「What A Wonderful World」는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 삽입돼 88년 한국에서 다시 히트하기도 했다.<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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