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상머리에 두고 날마다 들여다 보는 책이 있다. 늘 불만스럽게 여기고 불평을 하면서도 어느 날이고 보지 않는 날이 거의 없는 책 그것이 바로 우리 말 사전이다. 「국어사전」이라고도 하고 「우리말 사전」이라고도 하고 「한글 사전」이라고도 해 놓은 이 사전들은 우선 그 이름부터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한국말이면 「한국말 사전」이고 조선말이면 「조선 말 사전」이고 배달말이면 「배달말 사전」이지, 「국어」 「우리」 「한글」 이것이 어떻게 어느 한 겨레의 말을 모아 놓은 책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겠는가? 더군다나 우리 배달말의 사전이름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 적지 않고 「국어사전」이라고 해 놓았는가 하면 그 앞에다가 「에센스」니 「그랜드」따위 서양말까지 붙였으니 참 가관이다.
그리고 또 사전 첫 머리에 나오는 「머리말」부터 「―에 있어」 「보다 좋은」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따위를 마구잡이로 써서 우리 말을 오염하는 근원을 만들어 놓았다.
십 몇년 전이다. 어느 교육장이 도체육대회에 나가는 선수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나온 체격이 큰 학생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 이랬다. 『참 물건이네!』 나는 그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세상에 아무리 막돼먹은 교육장이라 해도 저런 천박한 말을 아이들 앞에서 하다니!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사전을 보고 더욱 놀랐다. 「물건」이라는 말을 풀이한 말에서 「대단한 사람을 홀하게 일컫는 말」이라 해 놓고는 쓰는 보기로 「그 놈 참 물건이다」라고 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나이 일흔 살의 일컬음」. 이것은 지금 새로 나와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두 사전에서 똑같이 「희년」이라는 말을 풀이해 놓은 말이다. 도대체 이것이 우리 말인가? 어느 사전에는 「적출」이라는 일본말이 있는데 「적출안내서」라는 말까지 올려서 풀이하기를 「화물 적송에 있어서 출화인이 화환을 체결한 경우에 화수인에게 보내는 서류」라고 해 놓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지금 정부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서 다음해 안으로 또 더 큼직한 사전을 만든다고 한다. 그렇게 서둘러서 제대로 된 사전이 나온다면 내 손가락에 불을 붙여 하늘에 올리겠다.<이오덕 아동문학가>이오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