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장례는 가족행사로 조용하게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이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쁜 생활과 빠듯한 수입, 극심한 교통난속에 친지들의 경조사를 일일이 챙기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인지를 모두가 공감하면서 왜 그런 일을 계속할까. 남들이 마구 뿌리는 청첩장에 짜증을 내던 사람도 자기 일이 되면 왜 같은 짓을 할까.가장 큰 이유는 돈 문제일 것이다. 결혼과 장례에 워낙 많은 돈이 들어가니 축의금 조의금에 의존하게 되고, 지금까지 이웃의 경조사에 계속 돈을 보냈으니 나도 도움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남들이 하던대로 청첩장 2,000장을 뿌려 반을 건지겠다는 마음도 먹게 된다.
그러나 돈만이 이유는 아니다. 가족행사를 사회적인 규모로 펼쳐 성대하게 치르겠다는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실력자, 권력자, 명사들을 가능하면 많이 참석시켜 행사를 빛내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나쁘게만 볼수는 없다. 그러나 너도 나도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오늘의 악습이 뿌리내렸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결혼식 장례식에 마지못해 참석하는 손님들이 많다면, 그 행사는 겉이 아무리 요란하더라도 왜곡되고 초라한 행사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신문들이 부음을 싣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신문의 부음은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정말 가까운 사람들은 전화 등으로 다 연락을 받고 있는데, 어중간한 사람들이 신문을 보고 할수없이 문상을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의 부음은 고인의 아들 딸들을 망라하여 직장과 직책까지 밝히고 있으므로 직업적으로 조금이라도 연결이 있는 사람들은 신문에 부음이 난 이상 모르는척 하기 힘듭니다. 신문에 부음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란 대개 돈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고, 신문 부음은 그들의 부의금 수입만 늘려주고 있을뿐 입니다』
그의 죽음을 뉴스로 알릴 필요가 있는 인물이라면 기사로 다루고, 단순한 부음은 아예 없애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오래전 각 신문들은 「결혼」을 소식으로 다루다가 중단했는데, 같은 이유로 「부음」에 대해서도 재고할 때가 온것 같다.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신문의 부음난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이제 그런식의 문상은 상주측에서 거절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결혼과 장례를 가족행사로 조용하고 아름답고 경건하게 치르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 가족의 일로 요란떠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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