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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보다 중요한건 신뢰”/이광일 국제1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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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보다 중요한건 신뢰”/이광일 국제1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6.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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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배신자야!』 8일 로만 헤어초크 독일대통령이 한 모임에 초청돼 연설하는 도중 청중의 한 사람이 느닷없이 이같은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헤어초크 대통령은 그를 향해 『내가 귀하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하등의 이유가 없소. 부끄러운 줄 아시오』라고 일갈한 뒤 연설을 계속했다.이 자리는 독일이 2차대전에서 패한 뒤 고향땅에서 추방된 독일인들의 모임에서 주최한 「실향민의 날」행사였다. 배신자라는 외침을 촉발시킨 연설내용은 이랬다. 『옛 독일제국의 동쪽 영토들은 우리의 역사적·문화적 유산이지만 더 이상 우리 땅이 아닙니다. 힌터폼메른 동프로이센 오버슐레지엔에서 독일인으로 태어난 여러분들에게는 매우 고통스럽겠지만 거기는 국제법상 엄연히 폴란드와 러시아 영토입니다』

이들 지역은 전후처리 과정에서 폴란드와 러시아에 강제할양된 곳이다. 당시 그곳에 살던 독일인들이 추방당한 것은 바츨라프 하벨 체코대통령이 최근 밝힌대로 『처벌이 아니라 복수』였다.

헤어초크 대통령의 연설은 이렇게 이어졌다. 『영토에 대한 소유권 논쟁보다 이웃나라들과의 신뢰 회복과 협력이 더욱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의 유럽 건설에 힘을 쏟아주십시오. 독일인들은 역사에서 올바른 교훈을 배웠다는 점을 입증해왔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범죄와 과오에 대해 굳이 남들의 지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독일대통령의 발언을 접하면서 일본의 경우에 생각이 미쳤다. 경위야 차이가 있지만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중국·대만과는 조어도(일본명 센카쿠 제도)를 놓고 분쟁을 벌이는 그 행태가. 그리고 2년전 프랑스혁명 기념일에 유로군단의 일원으로 개선문 앞을 행진하던 독일군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때 파리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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