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초여름 한국경제에 적신호가 켜지더니 삼분기의 출발선에서 정부는 급기야 위기경보를 발령하였다. 경제위기론에 웬만큼 익숙한 우리들이지만 잘 나가던 주력업종이 휘청거리고 감원바람까지 불어닥치는 판국이니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사회학자인 나로서는 매번 반복되는 경제위기론에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70년대 초반이후 지금까지 성대하게 치러왔던 것은 모두 「경제학적 위기론」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대부분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경제학자들과 이들의 동서뻘인 경제관료에 의하여 운영되어 왔다. 이들은 예외없이 시장예찬론자들이며 균형점을 향한 시장의 복원력을 맹신하는 사람들이다. 유신정권이후 현재까지 네 차례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지만, 경제관료들은 하나의 단일족보를 이루고 있음이 그것을 입증한다. 정치영역에서 독재는 마감되었더라도 경제운영에 관한한 시장예찬론자들의 독재는 아직 맹위를 떨치고 있는 중이다. 모든 유형의 통증에 가릴 것 없이 진통제를 처방하듯, 이들은 언제나 「수급균형」으로 회귀하는 공통적 버릇을 갖고 있다. 물가앙등에는 긴축과 임금동결을, 국제수지 악화에는 수입규제를, 생산성 하락에는 생산기술, 감원, 원가절감을 가장 탁월한 처방이라고 제안하여 왔다. 그런데 경제위기에 대한 정책패키지는 단기적 충격요법이 대부분이었으며, 산업구조 재조정은 재벌의 급성장과 그것의 파급효과를 촉진하는 공식적 지원책들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고통분담론」과 「재고통분담론」은 시장예찬론의 정치적 화술에 다름아니다.○인간·조직에 주목
경제학적 처방은 항상 균형논리에 근거한다. 과하면 빼고, 부족하면 더한다. 통화정책이 전형이다. 그런데 무엇이 균형인가?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가정일 뿐이다. 이에 반하여 사회학적 논리는 보이는 현실, 그 중에서도 인간적 요인과 조직 구조에 주목한다. 시장의 어떠한 변덕에도 끄덕하지 않는 조직과 제도를 중시하는 것이다. 물적 자본의 시의적 변화에 대한 지표보다 인적 자본을 관리하는 규칙과 행위규범의 창출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산업의 수출악화는 세계시장의 변동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한국 반도체 주력기업들 간의 상호 동형화와 과다경쟁 탓이 더 크다는 점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다. 세계 10대 기업에 꼽히는 삼성, LG, 현대전자는 생산품과 기업형태에 있어 서로 닮은 꼴이다. 특화를 통해 상호의존성을 증대할 생각은 유보해 둔채 모두 메모리분야에 몰려들어 수조원 규모의 거대자본을 경쟁적으로 투자해온 결과가 최근의 이상침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최근 가동률이 70%선으로 떨어진 석유화학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90년대 초반 앞다투어 신규증설에 나섰을 당시 공급과잉과 중국의 추격을 예상해서 적정규모를 유지했어야 옳았다. 출혈투자를 조정할 조직기제가 결여된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곧 감원될 노동자들은 어디로 갈 것이며, 미래의 감원후보자들은 어떤 탈출을 모의하게 될 것인가? 노동자들이 탈출을 꿈꾸는 현장을 두고 어떤 정책적 수단을 쓰더라도 경제위기는 극복되지 않는다. 혁신없는 투입주도형 경제의 현주소가 이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노동과정을 고려하지 않는 과학기술 우선주의는 조직내부의 혁신을 가로막는 주범이라는 점과, 경기침체시 대량 감원과 정리해고는 우수한 인적 자본의 낭비를 자초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경험과 기술을 재활용할 제도적 채널이 없다. 실업공포에 직면한 생산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신경영전략이 표방하는 생산성 향상 구호에 냉담하다. 경제적 위기의 복합방정식은 제도적 혁신과 조직능력의 제고라는 사회학적 논리로 해소될 수 있다.
○임금동결의 「묘약」
대선을 앞두고 임금동결을 감행하는 정부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소득과 직무안정을 보장받지 않는 노동자가 집권당에 표를 던지는 것도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다. 경기침체에 임금동결만이 묘약이 아니라는 점은 87년 대분규 이후의 임금추세가 입증한다. 경제학적 처방만으로는, 오늘의 동결은 반드시 내일의 폭등으로 나타난다. 이런 단기적 수단과 근시안적 정책기조가 언제까지 반복될는지 답답하다. 물론 임금동결이 고비용구조를 일시적으로 완화할 것이지만, 어떤 경기변동에도 자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제도적 조절기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스웨덴의 「생산성연합」, 독일의 「공동결정」이 좋은 예이다. 생산성 증대에 헌신하는 대가로 기업은 노동자의 생계와 직무안정을 책임지고, 자본이득의 일정부분을 주택과 연금에 할애하는 포지티브 섬 게임의 사회협약, 다시 말해 상호헌신의 순순환과정을 만들어 경제위기를 극복해왔다. 실질소득과 직무안정의 공적 책무까지를 규제완화 속으로 슬며시 넣어 방기하는 우리 정부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경제학적 연금술만으로 위기극복을 종용하여왔던 우리에게 제도혁신의 필요성을 각인시켜 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