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 아시아문화연서 전 7권 출간/객원교수인 재미 학자 방선주씨 수집/신문·일일전투기록·사업보고 등 “방대”한국전쟁 당시 남한내 빨치산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방대한 분량의 1차자료가 공개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94년부터 「북한사 연구 6개년사업」을 벌여온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소장 최영희)는 9일 이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전쟁 중 빨치산들이 만든 신문과 일일전투기록, 사업보고 등을 묶은 영인본 「빨치산 자료집」(전7권)을 펴냈다. 문건(2,896매)과 신문(717매)등 매수만 모두 3,6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는 한림대 객원교수인 재미사학자 방선주씨(63)가 80년대말부터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 수집해온 것이다.
대부분의 자료는 유엔군이 평양입성때 노획했거나 체포·사살된 빨치산 대원들이 소지하고 있던 것으로 기존의 경찰토벌기록이나 빨치산 생존자들의 증언과는 달리 1차자료라는 점에서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빨치산들은 경찰서나 면사무소등에서 탈취한 관공서문서 양식의 종이에 깨알같은 글씨로 그 날 그 날의 전투상황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전투에 참여한 빨치산의 수, 토벌대의 수, 화기의 종류, 전과나 피해정도 등이 상세히 수록돼 있으며 지휘관의 인적사항과 부대편제, 대원의 출신성분·생년월일·본적·주소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자료들도 포함돼 있다. 52년 1월29일 연천군에서 발견된 경상남도 노동당의 조직도표에는 93년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이인모 노인이 「경남노동신문 주필」로 기록돼 있다.
자료들은 빨치산들이 북한과의 연락이 단절, 고립돼 있었다는 생존자들의 주장과 달리 북한의 지시를 충실히 받아 수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김일성은 51년 1월2일 「서울 공방전에 적의 배후에서 교란작전을 펴라」는 요지의 전투명령 제002호를 하달하는데 이는 경기 여주·광주일대를 작전지역으로 삼았던 윤상칠 부대에 정확히 전달됐다. 또 당시 빨치산이 발행한 신문에는 당의 결정사항이나 김일성연설문이 게재되는 등 사실상 북한과 지속적인 접촉이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빨치산이 자체 발행한 기관지나 신문들은 인민군의 작전내용과 당시 전투상황을 소상히 알려주고 있다. 특히 남부군 기관지 「승리의 길」에는 남부군 총사령관으로 남한 빨치산역사의 전설적 인물로 꼽히는 이현상의 동정과 행적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이 신문 제23호(51년 11월3일)에 실린 「여수병란 3주년 기념좌담회」에서 이는 여순사건의 정치적 의의와 교훈에 대해 총괄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아시아문화연구소는 2000년까지 미국등에 있는 한국전쟁 관련 기록을 수집, 한국전 참전문서(50∼53년), 북한인인명록(45∼53년), 북한거주 외국인명부(45∼50년), 유엔군노획 북한정권문서 색인, 북한저작물논저목록 등의 영인본을 펴낼 계획이다.<변형섭 기자>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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