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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광장(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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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광장(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6.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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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쓸데없이 아옹다옹 싸우지않고 티격태격 다투지않고, 공연히 신경 거슬리게 하는 사람 없고 속 썩이는 사람 없는 사회에 살았으면 좋겠다. 무단히 억울한 일도 없어야 하겠고 분한 일도 없어야 하겠다. 사람 사는 곳에 어디 그런 태평세계가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우리나라 우리사회는 너무 심하다.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못살겠다고 탄식한다.우리는 너무 많은 갈등과 충돌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크게는 나라일도 그렇지만 우선 생활주변부터 실랑이의 연속이다. 신용없고 부정직하고 불친절한 사회가 비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수레가 자갈길을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안면할 정적과 평온이 없다.

가령 자동차를 몰아보자. 모두 자동차를 가지게 되면서 우리 국민의 본성이 드러났다.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 최상위권은 무엇을 말하는가. 질서의식 최하위권의 표현이다. 이런 폭주와 폭거가 우리 사회의 운행질서다.

좁은 골목길 양편에서 두 차가 마주온다. 어느 한쪽이 비켜서거나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이럴때 어느 쪽도 쉽사리 양보할줄 모른다. 한참만에 할 수 없이 이쪽이 피해주면 저쪽 차는 큰 승리라도 한듯이 유유히 지나가면서 고맙다는 인사 하나 없다. 이쪽은 패자가 되고 하루 종일 불쾌하고 그래서 다음번부터는 무슨 일에도 양보하지 않는다.

사고를 막기위해 앞차와의 거리를 어느만큼 띄워놓고 가면 옆 차선으로 잘 달리던 차도 꼭 그 사이에 끼여든다. 그 공간을 비워두기가 아까운 것이다. 그러니 여유를 두고 살아갈 수가 없다. 빡빡한 세상이 된다.

자동차끼리 사고라도 나면 자기는 절대로 잘못하지 않았다. 큰 소리로 고함부터 질러놓고 봐야지 점잖으면 뒤집어쓴다. 그래서 출격과도 같은 결전의 결의 없이는 차를 몰고 나올 수 없다. 사회 어느 구석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집안에 있다고해서 마음 편한 것은 아니다.

전기나 수도 고칠 것이 있어서 사람을 부르면 몇번이나 구걸해야 선심쓰듯 나타난다. 집 수리를 맡기면 약속대로 두말없이 해놓는 법이 없다. 홧김에 이사를 해버리고 싶어도 업자는 부당요금을 여기 붙이고 저기 붙인다. 집을 새로 짓기라도 하게 되면 벽돌 한장한장이 위약더미다. 이러니 집을 고칠 수도 이사할 수도 새로 지을 수도 없다. 신의 없는 사회에 울화가 치민다.

이렇게 오나 가나 하루도 분통이 터지지 않는 날이 없으니 온 나라가 불쾌와 불화의 도가니가 될 수 밖에 없다. 오늘은 어디서 무엇에 부딪칠까 하루도 조마조마하지 않는 날이 없으니 불안하고 불편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이 사람 사는 재미가 아니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는 세상이 편안해지면 재미는 얼마든지 딴데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에게는 시장의 시대가 있었다. 가난하던 시절 산다는 것은 생존경쟁이었고 법칙은 적자생존이었다. 싸우고 속이고 밀쳐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다. 진짜는 가짜에 밀려나고 정직은 사기에 추방당했다. 예의와 양심은 항상 패자였다. 이것이 시장의 풍속이다. 시장은 아귀다툼과 약육강식과 염치불고의 세계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잡답의 무질서에 지배되어왔고 아직 그 구습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빈곤연대의 시장의 시대에서 경제발전과 함께 광장의 시대로 와 있다. 시장이 만인대 만인의 투쟁의 마당이라면 광장은 만인과 만인의 화합의 마당이다. 좁은 시장바닥처럼 빡빡하던 마음들은 경제적 여유와 더불어 넓은 광장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특히 개발연대의 독재정권 시절에는 국민이 각자 사리의 개인으로 족했을는지 모르지만 민주화 시대의 국민은 모두 건전한 시민이어야 한다. 광장에는 이 민주시민들의 평화로운 공생공영이 있다. 이것이 광장의 사상이다. 시장의 무질서에서 벗어나 광장의 규율과 법도와 모럴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곧 모든 사람을 서로 마음 편하게 하는 길이다.

시장에서 광장으로, 우리는 지금 국민정신의 변환이 필요하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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