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부작용 불만팽배로 모 시대 동경 참배객 북적9일은 공산중국을 건국한 모택동(마오쩌둥)이 사망한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사망직후 중국의 발전을 수십년 지연시킨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과오로 「격하」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모는 강산이 두번 바뀐 지금은 중국 노백성(라오바이싱:일반국민)들 사이에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모의 사망 20주기를 이틀 앞둔 7일 북경(베이징) 천안문광장 모주석기념당 앞에는 모택동의 미라를 「참배」하기 위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특히 노인들이 주류를 이룬 참배객들은 올해부터 사망한 국가영도자들의 추모행사를 기일이 아닌 생일에 갖기로 한 당국의 지침은 아랑곳않는 태도였다.
등소평(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중국 인민들은 모시대 때보다 훨씬 잘살게 되었다. 그러나 개혁개방의 이면에서 독버섯처럼 파생되는 사회불안, 빈부격차, 물신숭배 등 부작용이 속출했고 이런 배경하에서 모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날 천안문을 가기위해 탄 택시에도 모의 초상화 배지가 차창에 주렁주렁 달려 있어 그 이유를 묻자 운전기사 왕산(29)은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우면서 다른 말이 필요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전 만난 중국의 한 인사는 모의 문화대혁명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분명한 착오였다. 그러나 그 순수한 동기는 평가할 만하다』며 『모가 없었으면 현재의 중국은 없었을 것이며 더구나 이와같은 주체성있는 중국은 생각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현 중국에 비판적인 한 인사는 『개혁은 빈부격차와 불평등, 도시와 농촌의 괴리 등 중국사회를 계급사회로 변모시켰다. 또 다른 모가 출현해야 한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모는 사후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정적」으로 「살아 있다」는 느낌이다.<북경=송대수 특파원>북경=송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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