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의 대권주자간에 때아닌 노선갈등상이 연출되고 있다. 여권핵심부의 거듭된 자제요청에도 불구, 불씨를 지핀쪽은 김윤환 전 대표의 「영남권배제론」. 김 전 대표는 방미중 차기대권에서 영남권의 배제주장을 폈다. 이에 박찬종 고문이 김 전 대표와 이회창 상임고문의 「패거리정치 청산론」까지 싸잡아 비판하면서 이 논쟁은 확산되고 있다. 이들 3인의 입장을 들어본다.◎이회창 고문/“별로 할얘기 없어” 공개대응 자제/측근 “박 고문 발언 흠집내기 의도” 주장
신한국당의 이회창 고문은 7일 박찬종 고문의 잇단 비난발언에 대해 웃기만할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실제 이고문은 이날 종로구 변호사사무실로 찾아온 기자들에게 『별로 할 얘기가 없다』며 애써 만남을 피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식의 절제된 무반응이었다. 그의 보좌진도 이고문의 심경을 묻는 질문에 『소이불답』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이고문측의 무반응은 얼핏 박고문의 격렬한 비난에 비하면 다소 의아스럽다. 매사를 빈틈없이 되짚으며 명예를 중시하는 평소 스타일로 봐서도 예상밖이다. 다만 그의 측근들은 『강릉을지구당 개편대회 불참문제는 이미 지난 4일 결정된 것으로 최욱철 의원에게 양해까지 구한 사안』이라며 『박고문이 이를 마치 자신의 발언과 관계된 것인양 곡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고문측이 공개대응을 삼가고있는 것은 불필요한 구설수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내부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한 측근은 『박고문 발언은 그가 입버릇처럼 얘기해온 새정치와도 거리가 있는 것』이라며 『이고문을 진흙탕싸움에 끌어들여 흠집을 내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박고문의 발언에 대해 공개반박하는 등 역공을 펴자는 견해도 없지않았으나 이고문이 이를 만류했다는 후문이다. 한 측근은 『김영삼 대통령이 해외순방중인데다 당내분란을 유도하는 계산된 발언이 분명한 만큼 휩쓸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고문측은 이달 중순의 지구당개편대회를 통해 「새정치」에 대한 지론을 거듭 밝히면서 박고문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반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고문의 한 핵심측근은 『지역할거정치타파, 붕당정치청산등 구습타파를 주장해온 이고문의 새정치론을 모를 리 없는 박고문의 발언의도가 의심스럽다』며 이고문의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전했다.<이동국 기자>이동국>
◎김윤환 고문/“영남 배제,국민통합차원 일반론”/“일부 정치적 득실만 생각 소아적 반응”
허주(김윤환 신한국당 고문의 아호)는 오는 9일 「빈배」로 돌아온다.
『차기정권이 또다시 영남에 돌아가야 되느냐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내용이 진심이라면 허주는 이미 마음을 비운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고문의 이른바 「영남배제론」은 사실상「허주의 대권포기선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점에 대해선 김고문의 측근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정가일각에서는 김고문이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영남정권 불가론을 내세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영남출신 특정주자」의 대권옹립을 위한 「거중조정자」역할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의도로 보고있다.
신한국당의 당내여건이나 국민여론등을 감안할때 영남후보로의 정권재창출은 불가능하다는 게 허주의 최종판단이며 그는 지금 이같은 상황인식을 토대로 새로운「줄타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고문측은 「허주의 고민」에 대한 본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으며 이로인해 정치적 파장이 야기되고있는 현실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우선 김고문의 문제발언은 무엇보다 국가적 해결과제인 지역주의해소를 위한 실천방안 차원에서 나온 얘기라는 것이 측근들의 주장이다. 김고문은 국민통합이란 대국적 견지에서 정치철학의 일단을 밝힌 것인데 일부인사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득실만을 고려해 소아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영남출신인 김고문이 영남배제를 주장했다면 이는 자기희생을 감수한 발언인데 어떻게 허주의 정치적 계산으로 몰아가느냐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김고문의 한 측근은 『김고문은 평소 생각하던 대로 일반론을 얘기했을뿐 어떠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얘기한 게 아니다』면서『상당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을 그냥 짚고 넘어간 것이지, 누굴 밀고 누굴 배제하자는게 아니지 않느냐』고 해명했다.<정진석 기자>정진석>
◎박찬종 고문/“당이 우선,군계일학식 태도 안돼”/“식사만 해도 패거리정치냐” 연일 비난
신한국당 박찬종 고문은 7일 강릉을 지구당개편대회에서도 이회창, 김윤환 고문을 매섭게 비판했다. 전날처럼 직접화법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박고문은 은유나 비유를 동원, 비수를 연상케하는 비난을 퍼부었다. 박고문은 축사에서 『당인이 된 이상 당을 아끼고 사랑해야한다』며 『당을 자기목표를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0년대 정치인의 사표였던 조병옥 박사는 「나 보다 당, 당 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에앞서 박고문은 기자와 만나 보다 직설적으로 이회창 고문을 비판했다.
―이회창 고문측은 박고문이 잘못 이해했다고 한다. 선거때부터 주장해온 붕당정치의 극복을 「패거리」라는 표현으로 말했을 뿐이라는데.
『그렇다면 모든 얘기가 다 원론이지. 김고문의 영남배제론도 원론, 이고문의 패거리정치론도 원론, 내 얘기도 원론이지』
―이고문의 「패거리」발언을 단순히 원론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원론을 얘기하는 사람의 표정으로는 너무 강하다. 결의에 찬 표정이더라』
―붕당정치는 박고문도 비판해온 내용아닌가.
『물론 그랬다. 하지만 나는 4·11총선때 주로 야당을 겨냥했다』
―이고문의 발언중 구체적으로 문제되는 부분이 무엇인가.
『패거리라는 말을 들을정도로 신한국당내에서 계파가 있는가. 민주계만 보더라도 그게 어디 계파인가. 친밀도를 높이는 정도가 패거리라면 식사를 하면서 우호적인 그룹을 넓히려는 것도 패거리정치아니냐』
―이고문이 예정과는 달리 강릉행사에 오지않았는데.
『강릉 오는 비행기에서 자기만 군계일학이고 나머지는 매도하는 이회창 고문의 스타일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더라. 이홍구 대표처럼 해야지, 혼자만 살려하면되나』<강릉=이영성 기자>강릉=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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