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레트나 샤크가 아니면 가게에서 면도날을 살 수 없다. 국산이 안팔리니까 가게에 국산면도날을 갖다 놓지 않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판로가 막혀버린 이 분야 중소기업들이 전멸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면도날 하나조차 제대로 만들 수 없는 경제구조―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면도날을 만들어 달러 한푼이라도 더 벌어들이려고 애를 쓰는데 이제 겨우 소득1만달러 수준인 미완성 개발도상국가가 면도날같은 것까지 수입해다 쓰느라고 달러를 펑펑 써대고 있는 이 기형적인 구조가 바로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난국의 실상이다.
정부관리들이나 기업인들은 소비자들을 탓하고 있다. 면도날까지 국산을 외면하는 병적인 외제선호, 분수에 넘는 호화사치와 과소비, 무분별한 해외여행 등이 수입을 폭증시키고 적자를 확대시키고 외채를 쌓이게 한다는 것이다.
근로자들도 비난을 듣고 있다.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와 떨어지는 생산성, 과격한 분규로 기업에 부담을 주고 경쟁력을 떨어뜨려 조그마한 중소기업들까지 설땅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비난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임금―고지가―고금리 등 고비용구조를 수십년동안 고착화시켜 기업경쟁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했고 엄청난 물류비에다 온갖 간섭규제로 도저히 기업을 할 수 없도록 환경을 악화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서투른 개방과 산업구조조정의 실패로 농업기반을 와해시켰고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중산층의 토대를 붕괴시켰으며 영세소기업과 중소기업들을 줄줄이 도산시킨 것도 모두 정부가 책임을 져야할 대목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면 기업은 어떤가. 기업 혼자만 억울한 희생자가 돼왔던 것인가.
일본제조업근로자들의 시간당 임금이 23.6달러인데 우리는 7.4달러다. 보급형 중형차 기준으로 미국시장에서 일본차가 1만3천달러 내외인데 우리수출차는 1만1천달러 이상으로 가격차를 거의 못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시장에서 한국산 중형차는 거의 전멸해가고 있다. 3배나 되는 비싼 임금을 주고도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가격의 수출을 하고 있다. 고임금이나 고비용만 탓할 일이 아니다. 기술을 말하지만 면도날 만드는데서조차 기술의 장벽을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동차도 안되고 면도날도 안되는 이유, 지금까지 안 알려진 뭔가 다른 숨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오늘의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근로자, 소비자와 정부 등 경제활동의 주체들이 모두 생각을 고쳐먹고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우선 먼저 달라져야 할 곳은 기업이다. 기업은 경제활동의 조직자이고 지휘자이며 책임자다. 스스로 안되는 이유를 찾아내고 과감한 변화와 자기개혁을 통해 살길을 찾는데 솔선해서 앞장서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