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문학평론가 김현씨가 죽었을 때 그의 제자인 한 시인은 「이 세상을 다 읽고 가신 이」라는 제목의 글로 스승을 애도했다. 그의 왕성한 독서와 집필, 끝없는 지적 호기심, 명쾌하고 정밀한 비평을 더 이상 접할 수 없게 된 안타까움이 담긴 말이었다. 프랑스문예를 중심으로 방대한 저작을 남겼고 무수한 우수신인을 발굴해낸 김씨는 그 시인의 표현대로 세상읽기에 탁월했던 지성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그와 같은 독서인들이 지금도 많다. 이 범람하고 충일하는 영상매체의 시대에 그들은 활자매체의 위엄과 위상을 지켜가는 「고도의 정보입력장치」(평론가 유종호씨가 평론가 김윤식씨를 가리켜 한 말)들이다. 언제 그 많은 책을 읽고 그 많은 글을 썼을까 싶게 그들은 끊임없이 독서하고 사색한다.독서는 가을에만 하는 것이 아니지만 역시 책 읽기에 좋은 때는 가을이다. 이 삽상한 정밀의 계절은 책을 들고 삶과 세상을 생각해보고 싶게 한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두렵고 마음이 급해진다. 책이 책을 만들고 책이 책을 죽이는 세상이다. 그렇게 숱한 책들 중에서 「한시미학산책」에 접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한양대 정민 교수가 쓴 그 책에는 자연과 함께 살아온 선인들의 감수성과 재지가 영롱하고 선렬하다. 틀에 박힌 것처럼만 보였던 한시의 풍경묘사, 이른바 사경이 실은 시인의 내면표출인 이른바 의경이었음을 알겠고 격물치지의 세계도 어느 만큼은 짐작할 수 있을 것같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선인들에게는 시가 곧 생활이요 독서가 곧 삶이었다는 점이다.
올해에도 9월은 독서의 달이다. 문체부는 「사색의 계절, 독서의 계절」이라는 구호를 정하고 독서포스터 독서달력을 만들어 돌리고 있다. 무려 400여 기관, 단체가 920여 가지의 행사를 벌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행사는 행사일 뿐이다. 왜 독서를 해야 하는지, 왜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생긴다)인지는 결국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독서인이 될 수 없다. 누구나 이 세상을 다 읽고 갈 수는 없지만 최소한 책에서는 이 세상을 읽는 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책을 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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