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보자」정책에서 「바르게 살자」정책에로 국정지표가 바뀐지도 이제 수년이 되었다. 문민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역점을 둔다고 강조하면서, 복지국가·문화국가를 표방하여왔다. 그런데 요즘 재경원의 내년도 예산안 편성과정에서 중요한 사회복지정책들의 예산이 삭감된 사실이 밝혀져 이번 정기국회의 예산심의때 논란이 예상된다. 여당은 복지예산의 지나친 삭감은 그동안 여당이 내세워온 「삶의 질」 향상정책에 정면으로 위배되므로 내년 대선등의 득표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고, 야당은 정부가 대선을 위한 선심성 예산을 짜면서 사회·복지를 희생시킨 것이라 비판하고 있다. 대체로 긴축예산을 해야만 어려운 경제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공감하지만, 국방비와 대규모 건설사업비의 비중은 커지고 「바르게 살기운동」 등 관변단체의 예산은 적절히 반영되어 있는데 힘없고 돈없는 사람들을 위한 복지예산을 깎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판단된다.○못가진 사람 배려
필자는 어떤 정당이나 정치적 견지에서가 아니라 정부가 잇달아 발표해온 정책이 예산면에 연결되지 못하고 정부의 선전 따로, 운영 따로 식으로 되어갈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우려된다.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것이 허울좋은 정책레테르로만 그친다면 김영삼정부의 마지막 해도 복지국가는 구호의 성찬으로만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70조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은 국정운영의 물질적 뒷받침으로 국민의 세금과 직결되는 것이다. 사실 성실히 일하며 살아가는 국민들이 국가 속에 산다는 이유로 세금의 부담을 더욱 느끼면서도 납세의무를 지키지만,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나라를 위해 선용되는가에 관심이 안갈 수 없는 것이다. 나라살림이 커지면서 쓸 곳이 많겠지만, 복지 및 사회보장에 관한 국가의 책무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아닌 헌법적 의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국민이 인간다운 생존을 행복하게 누리도록 사회보장수급권은 소득보장, 주거보장, 의료보장, 교육보장, 복지서비스보장 등으로 내용이 다양한데, 사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헌법적 권리가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세금은 많이 내는데 국가로부터 무슨 혜택을 받고 있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드는 것이다. 이 사회에 돈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가고 마땅히 쓰여져야 할 곳에는 메말라 있는지? 분명 우리나라에 돈은 권력과 밀착되어 있는 것같다. 사실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재벌들이 수억원의 돈을 내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이렇게 부가 편재되어 사회가 선심에 의해 문제해결되는 구조는 뭔가 잘못된 것이라 느껴진다. 가끔 농촌에 내려가면 농민들의 원성이 대단하다. 필자도 대학교수라고 『어디다 정신 팔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국가정책의 배려를 촉구하지 않느냐』는 꾸지람도 들었다.
삶의 질에 관한 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즉 우선 국가가 헌법적으로 부과받은 책임을 성실히 예산으로 반영하여 물질적으로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둘째는 국민 각자가 삶의 질을 높이도록 문화를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과거보다 어느 정도 잘 산다고 분수없이 과잉소비하여 벼락부자같은 천박한 생활을 한다면 삶의 질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한 아무리 세계화를 강조해도 한국인이 인간으로서, 인류의 일원으로서 자질을 갖추지 않으면 국제경쟁력을 논하기 전에 제외된다. 1952년에 이미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어 국제적으로 질병급여, 실업급여, 노령급여, 업무상 상해급여등 구체적으로 감시받고 있다. 적어도 이 정도는 넘어서야 복지국가로 인정되는 것이다.
○복지는 국가 의무
이렇게 볼 때 국가적·개인적 차원에서 모두 삶의 질의 과제는 아직도 요원한 감이 없지 않다. 솔직히 사회보장수급이 너무 안 되어서도 문제이고 너무 많이 되어 일을 안 하려고 해도 문제이다. 그렇지만 현재로는 한국땅에 태어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삶의 질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그 혜택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의 수를 줄여야 한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삶의 질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 이 사회가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선은 남이 나보다 더 가졌다는 것을 배 아파하기보다 반대로 나보다 못 가진 자가 있다는 사실을 가슴아파하는 데에서 삶의 질은 출발될 것이다. 한국인의 삶의 질의 문제가 예산으로 모두 해결될 것은 아니지만 예산국회를 앞두고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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