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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온달산성(문화유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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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온달산성(문화유산을 찾아서)

입력
1996.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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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우거진 성벽엔 온달장군 기백이…충북 단양군 영춘면 하리에 위치한 온달산성은 남한강의 절경을 굽어보는 곳에 위치해 있다. 해발 323m의 가파른 봉우리를 30분쯤 오르면 마치 송판을 겹겹이 쌓아올린 듯 전판암으로 축조된 성벽이 장엄하게 펼쳐지기 시작한다. 초가을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내리는 성벽에는 억새들이 우거져 더욱 처연한 감회를 불러 일으키고 발아래 굽이치는 남한강은 이 땅에서 명멸해갔던 역사의 흔적을 말해주려는 듯 애절한 몸짓으로 흘러가고 있다.

성의 생김새는 봉우리정상부의 남쪽을 주축으로 하여 직사각형에 가까운 완만한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높이가 8m, 길이가 700여m에 이르는 웅장한 모습으로 우리나라 산성 중에서는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

이 성을 온달산성이라 부르는 이유는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이곳에서 최후를 마쳤다는 설화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소백산맥과 남한강 일대를 놓고 고구려와 신라가 전쟁을 벌일 때 온달장군은 『내가 계립현(문경)과 죽령서쪽을 다시 찾지 않고는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맹세하고 이곳으로 출정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온달장군은 이 전투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그 죽음이 얼마나 사무쳤는지 온달장군의 시신을 담은 관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평강공주가 찾아와 섬섬옥수로 관을 어루만지며 『이제 생사가 결정났으니 그대로 돌아갑시다』고 달래자 비로소 관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1,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나그네의 심금을 울려준다.

하지만 우리에게 온달장군이 실지회복의 한을 품고 전사한 아단성은 단양의 온달산성보다는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아차산성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이는 아단의 단과 아차의 차 두 글자의 모양이 비슷하고 삼국사기에 인용된 「한북지지」란 표현에 착안하여 그 출정지를 한강북쪽의 아차산성이라 유추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비롯한 어떤 역사서에도 아차산성을 일명 아단성이라 한 기록은 없다. 이에 비해 영춘은 옛지명이 을아단이었으며 온달산성을 아단산성이라 부르는 점, 또 단양이 온달장군이 말한 계립현과 죽령이남지역이 가까운 점 등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영춘의 온달산성이 정설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교통편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제천가는 버스를 타고 제천에서 다시 구인사 가는 버스를 탄뒤 영춘에서 내려 하리남천다리를 건너면 산성으로 오르는 입구다.<이형권 역사기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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