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의 난초향기에 사색이 여무는 가을이다. 마음끄는 것이 비단 파란 하늘 뿐일까. 편지함엔 연주회를 알리는 소식들이 가득하다. 모두 폭염을 이기며 가꾼 소중한 열매들이다.가을 문턱을 여는 것 가운데 유난히 「첼로에의 초대」가 많다. 가을과 첼로―이는 한 폭의 그림같은 산책로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계절 변화에 따라 의상을 갈아입듯 감성도 마찬가지다. 계절과 음색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왜 낮고 따뜻한 목소리의 첼로, 갈색 톤의 낭랑한 선율이 그리운 것일까. 여름 휴가와 더위 탓으로 풀어진 해방감에서 다시 내면을 추스르려는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 목소리는 바로 자신을 찾으려는 생명의 힘이다. 때론 살아온 시간을 반추할 때도 첼로는 더없는 벗이 된다.
엘리베이터에서 흘러 나오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에 이끌려 음악 감상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는 어느 음악 애호가의 이야기는 첼로의 호소력을 느끼게 한다.
많은 작곡가들이 첼로명곡을 탄생시켰다. 그러면 어떤 곡부터 들으면 좋을까. 첼로곡에는 협주곡이나 소나타처럼 비교적 길이가 긴 곡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도 3∼4분 남짓한 소품들이 더욱 많다. 때문에 소품 명곡을 모아놓은 한두 장의 CD만으로도 첼로음악에 입문이 가능하다.
포레의 「꿈을 따라서」, 생상스의 「백조」, 드뷔시의 「아마빛 머리칼의 소녀」,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를 산책하며 첼로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베토벤의 5곡의 첼로소나타는 그의 10곡의 바이올린소나타보다 더 값지고 브람스의 2곡의 첼로소나타는 심연의 무게를 던져준다.
드보르자크의 첼로협주곡은 반드시 거쳐야 할 첼로감상 과제곡이랄 수 있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6곡은 귀 열린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첼로의 거장 피에르 푸르니에, 야노스 슈타커, 앙드레 나바라,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뿐만 아니라 젊은 첼리스트 요요마, 미샤 마이스키는 이미 우리에게도 친숙한 연주가가 되었다.
이달 무대에서 만날 신동 장한나, 첼로계의 샛별 김두민, 이종영교수가 이끄는 33명의 비하우스첼로앙상블은 더없이 반가운 초가을의 전령이다. 낮은 목소리의 소중함을 아는 사회가 바로 민주사회이다.
문화시민들이여 첼로를 듣자.<탁계석 음악평론가>탁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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