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란계 공격 등 「워싱턴 궁지몰기」 소득 판단/「치고 빠지기 전술」 미 대응 주목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1일 북부 쿠르드족 거점 공격에 나섰던 이라크군의 철수를 발표, 고조됐던 걸프만의 군사적 긴장은 일단 진정 국면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후세인이 일종의 「안전지대」인 「비행금지구역」까지 설정해 쿠르드족 보호를 주장했던 미국의 의지를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해 시험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이라크군 철수의 진위여부이다. 약 4만 병력의 기계화부대를 투입해 반군 거점인 아르빌을 완전 장악한 이라크는 이번 공세가 지난달 쿠르드지역을 침범한 바 있는 이란과 친이란계 쿠르드애국동맹(PUK)에 「중대한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상 철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다수의 군사전문가들은 후세인이 일부 군사력을 잔류시켜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후세인 무장활동의 최대 거점이자 터키로 연결되는 송유관 통로인 이 지역의 장악은 후세인 정권안보와도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걸프지역에 주둔한 240대의 항공기만으로 쿠르드족 보호에 나섰던 미국의 노력은 한계에 달한 채 「새로운」 선택을 강요당할 처지이다.
또 하나는 후세인의 「치고 빠지는 전술」에 미국이 또다시 당했다는 인식이다. 후세인은 91년 걸프전 패전이후에도 거의 해마다 군사력을 쿠웨이트 접경 등지로 이동시켜 미국 등 서방측과의 게임을 즐겨 왔다. 이라크의 이러한 제한된 도발은 쿠웨이트 침공에 따른 유엔의 지속된 경제제재에도 건재를 과시, 내부를 단속하고 밖으로는 아랍의 맹주지위를 유지하려는 다목적 카드로 분석돼 왔다. 특히 이번에는 타깃을 「소외민족」인 쿠르드족에 맞추고 미국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란과의 대결구도를 연출, 미국을 곤혹스럽게 하는 지능적 수법을 보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후세인으로 부터 「공」을 넘겨 받은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윤석민 기자>윤석민>
◎친이라크친이란 쿠르드족 내분사/75년 대이라크 독립투쟁 싸고 양분/92년 휴전후 송유관 관세수입 분배 등에 유혈 재발
이라크군의 쿠르드족 거주지역 침공은 쿠르드족 내부 갈등을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시켰다. 마수드 바르자니(50)가 이끄는 친이라크계 쿠르드 민주당(KDP)이 이라크군과 함께 잘랄 탈라바니(60)의 친이란계 쿠르드 애국동맹(PUK)을 공격함으로써 이들은 「화해할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46년 창당된 KDP는 58년 이라크정부로부터 활동을 보장받아 한동안 「합법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나 이라크가 65년부터 쿠르드족 독립불허 정책을 펴게 되자 쿠르드족의 대이라크 무장투쟁을 지도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KDP는 그러나 곧 내부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KDP지도자 바르자니가 이라크정부와의 우호관계를 추구하는 온건노선을 추구한 것이 계기였다.
바르자니의 노선에 반발한 탈라바니가 75년 KDP에서 탈당한 뒤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좌파성향의 PUK를 창당함으로써 쿠르드족은 양분됐다. 탈라바니는 이란 등 이라크를 견제하려는 주변국들과 서방의 지지를 얻어 이라크내 독립국가를 수립하겠다는 강경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PUK는 91년 걸프전후 서방측이 북위 36도 이북의 이라크 북부지역에 쿠르드족 안전지대를 설정하자 이곳에 자치기구를 수립, 이라크를 위협해 왔다.
KDP와 PUK는 92년 협상을 통해 각각 절반의 지분으로 이라크 북부 안전지대내에 자치정부를 구성하기도 했으나 이라크 송유관에서 나오는 관세수입 분배 등을 둘러싸고 유혈분쟁을 일으켜 최근까지 모두 2,200여명이 숨졌다.
이번 이라크정부의 쿠르드족 거주지역 침공은 결과적으로 쿠르드족 내분을 이용, 터키로 연결되는 송유관의 안전책을 확보하는 실익을 챙겼다는 분석이다.<권대익 기자>권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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