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로 파생된 사회 병폐 등 총체적 점검을지난주 국민적 관심을 끈 가장 큰 사건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선고공판일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두명의 전직 대통령을 심판하는 재판인 만큼 국민적 관심과 언론사의 취재열기도 대단했다. 그러나 이 재판을 집중보도한 지난주 한국일보를 읽으면서 몇가지 아쉬움을 가졌다.
첫째, 사건보도에 안일한 자세가 엿보인다.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기사가 전체지면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까운 지면을 불필요하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8월27일자에 판결문 요약을 10개면에 걸쳐 실은 것은 주요 사건을 기록한다는 차원에서는 이해되지만 지면의 낭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신문들은 3∼4개면에 걸쳐 간추려 실었다. 10개면의 판결문 요약이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판결문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언론의 시대적 사명이 요청된다면 판결문의 요약문외에도 전·노 두사람이 왜 단죄돼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명분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공감하는 이 사건이 후세에 올바르게 인식되기 위해서는 재판의 역사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보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느 신문과 마찬가지로 선고에 대한 예측과 그 결과, 각계각층의 반응, 사면에 대한 예측과 추측성 기사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류의 기사가 보도의 핵심이 돼서는 안된다. 이보다는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다각적으로 조명하여 사회적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는 언론의 「사회계도적」기능이 요구된다.
둘째, 사건의 역사적 중요성에 비춰볼 때 내용의 깊이가 없다. 이번 재판을 통해 일단 법적으로 두 전직 대통령이 12·12와 5·18의 주범으로 단죄는 됐지만 법적으로 시비가 가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과거 두 전직 대통령 시절에 침묵하며 편안히(?) 살아온 우리, 특히 그 시절에 혜택을 누렸던 특정 계층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기사가 필요하다. 전·노 두 전직대통령의 이름과 업적이 새겨진 현판과 기념비 등의 소재파악과 철거문제를 다루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9일자 사회면에 실린 「전·노씨 기념비 등 철거여론」제하의 기사가 적절한 예가 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잘못된 제도와 관행, 우리사회 전체에 만연된 패거리의식, 그리고 이 기간동안 심화한 학연과 지연의 갈등, 부유층의 사치, 부동산투기 등과 같은 비리와 병폐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기사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잊혀지고 따라서 전·노 두 사람의 죄목도 희미해진다는 사실을 감안, 이들에 의해 저질러진 사회적 병폐도 반드시 총체적으로 점검돼야 한다.
언론이 이러한 일을 제대로 해낼 때 「사회 바로 세우기」가 이뤄질 수 있다. 즉 죄인의 단죄와 더불어 미래발전적인 시각에서 사회적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기사가 필요하다.
셋째, 언론사 자신의 자성과 반성의 목소리가 결여돼 있다. 지난 군사독재정권 시절 국민은 우리 언론사가 어떻게 독재정권 유지에 큰 힘을 실어주었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보도에서 언론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두 전직 대통령을 만들고 보필하는데 기여한 언론사가 자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과거와의 단절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을 때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 바로 세우기」의 성패는 「언론 바로 세우기」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 비해 언론의 자유가 많이 신장됐다는 요즘에도 여전히 우리나라 신문은 하나만 구독해도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만큼 신문의 차별성이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신문들의 사건기사는 내용이 유사하고, 보도기간은 한시적이며, 보도방식은 용두사미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권력과 직결돼있는 사건으로 사회적 파문이 크면 클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신문의 기획력 부재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전·노 두 전직 대통령 선고보도도 이와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누구나 쉽게 예견할 수 있는 내용, 틀에 짠 듯한 내용에 독자는 실망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기획력이 두드러진 기사로 사건의 의미를 독자에게 제대로 제시, 「언론 바로 세우기」와 「사회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주기 바란다.<최현철 고려대 교수·미 아이오와대 언론학 박사>최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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