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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발표로 본 「근대 1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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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발표로 본 「근대 1백년」

입력
1996.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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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백년만에 13배로/대일 수입 58만배 증가/체류외국인 오히려 7만여명 감소/학급당 학생수 늘어 수업환경 악화/공무원 급여 직급간 격차 크게 줄어우리나라 총인구는 1백년동안 13배 늘어났으며 체류외국인은 한일합방이 있었던 1910년에 비해 지금이 오히려 감소했고 교육여건은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1일 통계청이 「근대통계 1백주년」(1896년 9월1일 호구조사규칙 첫 공포)을 맞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897년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남자 2백99만명, 여자 2백33만명 등 총 5백20만명이었다. 현재 남북한인구는 약 6천8백만명으로 당시보다 13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1897년 우리나라의 최대교역국인 일본과의 무역은 수출 7만1천달러, 수입 5만6천달러 등 대일흑자를 유지했으나 1백년이 지난 지난해에는 수출 1백70억달러로 24만배가 늘었으나 수입은 3백26억달러로 58만배가 늘어 엄청난 역조현상을 겪고 있다.

1898 독립신문에 게재된 서울물가를 보면 쌀은 1등미 1석당 8원(지금 가치로는 5만3천8백원 추정)이었고 계란 1백개의 가격은 0.8원(현재의 5천4백원), 쇠고기 1근은 0.12원(8백7원), 닭 1마리는 0.2원(1천3백원)이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당시에도 수도 서울의 물가는 꽤나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910년 당시 우리나라엔 총 18만4천명의 외국인이 체류하고 있었는데 이중 93%인 17만2천명이 일본인이었다. 현재 외국인 체류자수는 11만명선으로 오히려 당시보다 적은 상태이며 국적별로도 미국인이 20%(2만2천명)로 으뜸이고 다음으로 중국 1만9천명, 캐나다 1만9천명 순이며 일본인은 8.5%인 9천명에 불과하다.

1910년과 1995년을 비교할때 ▲초등학교수는 1백73개→5천7백72개로 33배 ▲교사수는 7백49명→13만8천3백69명으로 1백85배 ▲학생수는 2만1백94명→3백90만5천1백63명으로 1백93배 늘어났다. 그러나 학교당 학생수는 1백17명에서 6백77명, 학급당 학생수는 34명에서 36명으로 되레 악화돼 교육환경은 85년간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공무원봉급은 사무관급의 경우 1910년 16만5천원(현재가치환산)에서 현재 1백13만6천원으로 7배가량 늘어난 반면 국장급은 1백46만원에서 1백95만원으로 1.3배 증가에 그쳤다. 당시 직급간 임금격차가 지금보다 훨씬 컸던 셈이다.<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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