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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한 신재벌정책(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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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한 신재벌정책(사설)

입력
1996.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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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그리려다가 고양이를 그린다고 하더니 정부의 신재벌 정책이 그렇게 될 것 같다. 재정경제원과 증권경제연구원이 30일 공청회에 부친 「증권제도 개선 및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방안」은 재벌총수의 경영전횡과 재벌그룹의 투명경영을 보장하겠다는 신재벌정책의 당초 취지를 사실상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재벌그룹들의 강력한 저항에 또다시 굴복하고 만 것이다. 비록 입안과정에서 제도가 대폭 수정된 것이나 정책의 미성숙과 일관성 결여를 다시 한번 드러낸 것이다.정부가 처음 의도했던 신재벌 정책은 대주주의 독단적 경영을 획기적으로 제약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돼 있어 국민들과 투자자들의 기대를 모았었다. 반면 재계에서는 완강한 반대를 표명했었다. 실례로 주목할 만한 규정의 하나는 대주주에 대한 가지급금, 담보제공, 지급보증, 주식·부동산 거래를 즉시 공시토록 한다는 것이다. 대주주인 오너가 절대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업풍토에서 상장기업이라 하더라도 오너가 기업을 완전히 개인 사기업처럼 경영, 회사의 자금을 가지급금 등의 형태로 인출하여 비자금 등으로 활용해 왔다. 오너의 이러한 변칙자금 인출공시는 투명경영의 첫걸음이다.

재경원의 이번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방안에는 이것이 빠져있다. 상징적인 규정을 빼놓고 어떻게 경영의 투명성을 보장하겠다는 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기업의 유리창 경영에 필요불가결한 규정들은 하나같이 삭제하거나 약화시켜 버렸다. 재벌그룹 계열사간의 내부거래를 꿰뚫어 보려면 기업집단 연결 재무제표가 필요한데 내년부터 도입키로 했다가 이번에 보류했다.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서는 이것이 실시된지 오래인데 그 도입을 보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또한 미국에서 활발히 이용되고 있는 사외이사제도도 도입이 유보됐다. 한편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회사서류에 대한 청구열람권, 주총소집 청구권 등 행사할 수 있는 소액주주의 자격요건을 당초의 주식지분 2%, 2만주이상에서 3%, 3만주이상으로 강화했다. 또한 불법행위를 한 이사·감사 등에 대해 대표소송권과 해임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소액주주도 지분 1%, 1만주이상에서 1%, 10만주이상으로 높였다. 선진외국에 비교하면 소액주주의 기준이 너무나 높아 소액주주의 감독권 행사가 거의 대부분 불가능하게 돼 있다.

정부가 신재벌 정책구상을 밝힌지 6개월도 못돼 이처럼 백지화에 가깝게 반전하는 이유가 설득력이 없다. 정부측의 공식해명은 없으나 현재 경기 침체가 심화하고 있는 데다가 최근 전·노 비자금사건과 관련한 재벌총수에 대한 실형선고로 위축된 재벌그룹들에 대한 사기진작용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가공할 인식의 착오다.

국가경제의 건전화를 위해 신재벌정책은 원안대로 관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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