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과 가족, 친구,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이 낭설과 험담에 더이상 굴욕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후보지명경쟁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1984년 5월8일 민주당대통령후보경쟁의 선두주자였던 47세의 게리 하트 전 상원의원이 출마포기를 선언하자 미국 국민들은 놀라움속에 무척 아쉬워했다.
게리 하트가 누구인가. 농기구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찍부터 정치에 뜻을 두고 22세때인 1960년 자원봉사자로 케네디의 선거운동을 했으며 72년 대선때는 닉슨과 맞선 매커번의 선거사무장을 지냈고 75년엔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80년대에 들어와 카터의 재선실패로 침울했던 민주당은 하트의 등장으로 아연 활기를 띠었다.
이른바 신민주주의, 신지도력, 신리상등 3신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하트에 대해 당원과 국민들은 「제2의 케네디」라며 열광했다. 그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때 한지방 신문이 도나 라이스라는 모델과의 밀회하는 장면 사진을 보도, 결정타를 날렸고 하트는 인기절정에서 하루아침에 추락, 출마포기를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4년뒤인 87년 9월 또 한차례 추락사건이 있었다. 장본인은 「미국이상주의의 구현」을 내걸고 후보경선에 나섰던 45세의 미남 상원의원 조셉 바이든. 명문이라고 자랑하던 그의 연설문이 실은 케네디 대통령형제와 당시 닐 키록 영국노동당수의 연설문을 표절한 것이고 대학시절 낙제를 겨우 면할 정도의 수준임에도 장학금을 받은 우등생이라고 거짓말한 것이 들통나 도중 하차하고 말았다.
미국에서 대통령선거운동은 4년내내 한다. 누구든 출마를 선언하든 운동을 하고 다니든 모두가 자유다. 그러나 선언했다고 후보경쟁자 대우를 해주는게 아니다. 출마선언과 함께 외교, 국방, 경제, 세금, 교육, 복지, 낙태, 마약 등 각분야에 걸쳐 정견과 정책을 제시해야 하며 선언 다음날부터 각종 시민단체, 이익단체에 불려가 심문에 가까운 질문공세를 각오해야 한다.
여기서 무능과 무식, 그리고 정책안이 타당성이 없음이 드러날 경우 탈락되고 만다. 한편 언론등은 인물 됨됨이와 위법과 탈세에서 주차위반까지 족적을 추적하여 도덕성과 진실성을 조사한다. 이 모든과정이 선거 3∼2년전부터 공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국민들은 후보의 모든 것을 소상히 알게 되며 실제 유권자 50∼60%가 찍을 후보를 이미 결정을 하고 투표소에 간다.
미국 공화·민주양당이 이번의 대통령후보지명대회를 정당만의 행사가 아닌 전 국민적인 잔치로 치르는 것도 국민에 의한 후보심사와 결정으로 만들기 위함인 것이다. 이처럼 선진민주국가에서는 지도자를 밀실의 정치적 흥정으로, 또 어느날 갑자기 출현시키지 않고 반드시 국민의 예비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신한국당의 대선후보군들이 김영삼 대통령의 「독불장군에겐 미래가 없다」는 엄포로 갑자기 입조심 말조심하는 얌전한 학생들이 됐다. 여러 차례에 걸쳐 대권 논의에 대한 자제 촉구에도 여전하자 「불이익」을 내세워 직선적으로 경고한 것이다. 물론 김대통령으로서는 1년3개월 남짓 남은 대선에 관한 얘기가 만발할 경우 모두가 대권논의에 쏠려, 통치권의 누수현상으로 국정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고 또 당이 흔들릴 여지가 있어 일사불란한 단합과 한목소리를 강조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다수 당원과 국민들로서는 아쉽기 짝이 없다. 가뜩이나 전통적으로 지도자 키우는데 인색한 한국적 풍토에서 후보군들이 침묵한다는 것은 답답하기만 하다. 민주주의의 특장중의 하나는 공개주의와 투명성이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국민이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공론화하여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도대체 국민들은 후보군들의 정치철학과 국가경영에 관한 비전은 물론 중요한 당면 현안인 경제위기, 북한상황과 통일정책, 복지대책, 교육개혁, 국토개발, 환경, 그리고 삶의 질 향상 등 방략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또 경력의 도덕성여부, 즉 만에 하나 불법, 비리와 연루 흔적이 없지는 않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따라서 후보군들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각 분야에 대한 정책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국민은 신중하게 능력과 자질을 심사·검증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같은 정책경쟁 비전경쟁은 당을 혼란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활성화시키게 되며 나아가 국민의 인식과 판단이 쌓이고 지지폭을 넓혀 여당후보를 당선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여당이 일사불란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일사불란은 겉으로는 「굉장한 단결」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집권당의 진짜 힘과 저력과 자신은 언로의 활성화와 당내 민주화에서 나온다. 대선후보 지망생들이 활발하게 정책경쟁 소견경쟁을 벌이게 해야 한다. 그렇게해서 국민이 정론과 공론, 또 큰그릇 덕장 대인과 독불장군 돈키호테 작은그릇 소인등을 가릴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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