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투병때 첫 만남후 늘 가슴속에나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앞 뒤로 이어져 나오는 음들의 관계성으로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음악을 듣고 그것이 좋다라고 느낄 수 있는 기본적 능력은 「기대감」이다. 가령 「도, 레, 미, 파, 솔, 라, 시」라는 「소리의 열」을 들었다고 했을 때, 그 다음에 한 음 높은 「도」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기대감을 가진 사람이다.
「기대감」은 그것을 충족시키느냐 좌절 내지 지연시키느냐의 문제를 낳는다. 인간의 속성은 이상하다. 즉각적인 충족은 인간에게 큰 만족을 주지 못한다. 좌절 내지 지연을 경험한 후의 충족이 더 큰 만족을 준다. 좋은 음악을 분석해보면, 도처에서 충족의 지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기대감을 끝없이 야기함과 동시에 그 기대감을 여지없이 좌절 내지 지연시킨다. 좌절과 지연의 명수가 바로 베토벤이요 쇼팽이다.
어렸을 때 나는 충족이니 지연현상이라는 말은 몰랐다. 그러한 말을 알아야 음악을 아는 것은 아니다. 말같은 것은 몰라도 된다. 물리적 소리를 듣는 귀가 아닌, 음악심리적 소리를 듣는 귀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음악만을 좋아하던 내가 문학을 좋아하게 된다. 음들도 좋지만 언어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결핵의 덕분으로 오랜 세월동안 병원신세를 진다. 결국 소설과 시를 만나게 되고,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의 논쟁을 만나게 된다. 음악의 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른 관심사의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문학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한 시도 참여문학이념의 무게를 가볍게 생각한 일이 없었고, 순수문학의 지고한 가치를 외면한 일이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 정지용의 「호수Ⅰ」을 만난다. 만난 그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 노래를 좋아한다.
「호수Ⅰ」을 읽으면 무엇인가 한 눈에 쏙 들어온다. 훤히 그리고 확실하게 들어온다. 「그렇구나… 참으로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 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읽고 또 읽어도 그렇다. 내가 외워서 읊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시가 된다. 무엇이 어쨌든, 나는 이 시가 좋다. 이 시와 만날 때면 나는 호수만한 감회 때문에 눈을 감을 수 밖에 없다. 이 시에 온 몸을 던지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결국 나는 내 온 몸을 던지기 위해서 그 의미의 언어화보다 음화를 시도한다. 말로써는 도저히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시에 곡조를 붙여본다. 이 곡조를 듣는 사람도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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