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피고인 사형, 노태우 피고인 22년6개월.12·12, 5·18과 관련, 두 전직대통령에 내려진 추상같은 1심 선고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아직 2, 3심이 남아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 12·12는 신군부의 김재규 내란음모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 군권을 장악하기위한 군사반란행위였음이 명백해졌다. 이변이 없는 한 1심의 이 판단은 최종심까지 이어지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판결은 성공한 쿠데타의 기득 논리를 물리쳤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을 사고있다.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고 또 당시와 같은 위기상황 아래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상황논리가 배척됐다. 또 그들이 재임중에 「긁어 모았던」 천문학적인 축재행위도 단죄되었다. 재판부는 이 돈이 그들의 주장대로 통치자금이 아니라 뇌물이었음을 분명히 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판결은 잘못된 과거는 시간이 흘러도 반드시 바로잡히고 만다는 선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어느 누가 다시 힘으로 「합법성」을 허물려고 덤빌 수 있겠는가.
1심 판결내용에 정치권도 화답했다. 『이제 합법적인 권력은 음모에 의한 폭력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됐다』 일종의 반쿠데타선언이다.『권력에 의한 부정축재는 그 어떤 명분이라도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됐다』는 권력의 반부패선언도 있었다. 지켜 볼 일이다.
주요 외신들도 『추악한 과거사의 정리』라며 이 「세기의 재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더러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하고있는 집권자들에게 경종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들을 가난에서 구제해 주기만 하면 군사독재라도 용인받을 수 있다는 도박은 더이상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민들의 의사에 반해서 억압적인 통치를 하고있는 지도자들에겐 간담을 서늘케 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항소심과 상고심을 남겨놓고있는 현 시점에서 이 재판과 피고인들의 장래를 예단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벌써 정치권을 비롯, 곳곳에서 이들에 대한 사면얘기가 고개를 들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에게 사면이라는 은전이 베풀어지려면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있어야 한다. 즉 사법적인 조치가 종료된 연후에 가능한 일이다. 성급한 사면설에 여권은 「뜨거운 감자」를 움켜쥔 듯 편치않은 표정이다.
사면설의 배경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가지 자락을 깔고 있다.
먼저 십 수년간 국가를 경영해 온 전직 두 대통령을 헌정파괴 및 축재혐의로 재판에 회부한 것만도 큰일이며 이들에게 사형 등의 중형판결자체로 사실상 역사적 단죄는 끝났다는 시각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내려진 중형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보복정치의 악순환을 막기위해서나 국민화합차원에서, 「형 확정후 사면」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재판이 국헌을 문란케한 인사들에 대한 엄정한 법적 심판이지만 이들에 대한 형 집행이 자칫 정치적 보복으로 비치고 이것이 보복정치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이다.
국민화합을 위해 TK(대구·경북)지역 등 일부지역에서 일고있는 미묘한 민심도 전혀 무시해버릴 수 없다. 물론 12·12 및 5·18피해자들이나 광주 등 일부지역의 반발도 거센 것이 사실이다.
진정한 국민화합은 갈등과 증오를 용서와 관용으로 이끌어내는, 지난한 작업이다. 한 맺힌 이들에게 관용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관용으로 감싸안고 용서할 때만 진정한 국민화합이 가능하다. 그위서만 굴절된 역사바로잡기작업도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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